과거에는 사람에 걸리는 인형결핵(人型結核) 이외에 소에 걸리는 우형결핵(牛型結核)이 전파되기도 했다. 인형결핵균이 사람 몸에 침입하면 미열과 전신증상을 일으키나 주로 폐(肺)에 침입하여 폐결핵을 일으킨다. 우리나라에서 폐결핵은 제2급 법정감염병으로 지정되어 있다.
환자발생수·사망자수로 보아 우리나라 전염병 중 가장 중시되는 위치를 차지하며, 최근에는 발병자수의 비율[有病率]이나 사망률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으나 계속 질병관리에 힘써야 할 전염병이다.
결핵은 결핵환자의 기침·재채기 등을 통해서 직접 흡입되거나 공기 중의 균을 흡입하여 전염된다.
그 밖에 결핵균에 오염된 일상용품·식기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염될 수 있으나, 직접감염에 비해 비중이 크지 않다. 일반적으로 결핵은 유전적 요인 이외에 과로·영양실조 등이 원인이 되어 발병되므로 소모병(phthisis)이라 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동양의학에서는 결핵을 허로(虛勞)·폐로(肺勞)·골증(骨蒸)·전시(傳屍)·노채(癆瘵)·풍로(風勞) 등의 명칭을 사용한다. 서양의학에서의 소모병과 비슷한 노채는 말기에 이른 결핵을 말한다. 노채와 같은 의미로서 음허양위(陰虛陽痿)·부족증(不足症) 등의 용어가 있다. 이러한 결핵은 과로·영양상태불량 등의 원인으로 생긴다.
서양의학에서도 전염병은 전염병균이라는 한 가지 요인으로 발생된다는 단일병인론(單一病因論)이 거론된 바 있으나, 그 뒤 사회·경제·문화적인 요인들이 병균감염과 발병과정에 깊이 관여된다는 복수병인론(複數病因論)이 도입되었다.
따라서 결핵의 관리개념도 단순히 병원균 제거라는 차원에서부터 감염유발·발병촉진 등의 제요인을 제거한다는 차원으로 변하였다.
듀보(Dubos,R.)의 『건강이라는 환상(Mirage of Health)』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결핵은 사회가 도시화·산업화됨에 따라 근로자들이 밀집생활을 하게 되면서 도시전염병으로 부각되었다.
물론 결핵은 이집트의 미이라에도 흔적이 있고, 히포크라테스의 저서에서도 소모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본 후지[富士川遊]의 『일본질병사(日本疾病史)』에는 중국의 수·당나라 때부터 결핵을 허로라 하였다고 적고 있다.
금원사대가(金元四大家)는 결핵은 칠정(七情: 喜·怒·憂·思·悲·恐·驚)과 육음(六淫: 風·寒·暑·濕·燥·火)의 영향으로 인하여 음식노권(飮食勞倦)이 지나치게 되면 몸이 상하고 콩팥의 음액(陰液), 즉 진수(眞水)도 고갈되며 음화상염(陰火上炎)하여 발생된다고 했다. 칠정은 정신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요인이며 육음은 발병요인이다.
한의에서는 육음과 같이 병을 일으킬 수 있는 외부요인을 나쁜 기운, 즉 사기(邪氣)라 하며, 그 중 어느 것이 과다하거나 제철이 아닐 때 나타나면 발병된다고 한다.
따라서 사람이 정신적·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음식·피로·권태 등이 지나치게 되면 몸이 상하여 결핵이 발생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서양의학에서 결핵균이 발견되기 전의 결핵질병관과 매우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의학서적인 고려시대의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 권16의 노채문(癆瘵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노채는 특별한 원인없이 기력과 체후(體候)가 허약하게 되며 상심(傷心)과 심신의 과로에 의해 생기고, 몸 밖으로부터 풍한서습(風寒暑濕)의 나쁜 기운을 받으면 우선 학질이 생기고 기침을 하며, 조리·보양을 잘못하고 성교행위가 지나치며 오랫동안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여 생긴다. 그리고 살·피모(皮毛)가 마르며 한(寒)과 같은 나쁜 기운에 열(熱)이 결합되거나, 잠잘 때 식은땀이 나며 꿈속에서 사정(射精)을 하고 뱃속에 괴물이 생기며, 기침과 피고름이 나오고, 24종 또는 36종, 99종의 증세가 나타난다.”고 했다.
이 기록도 심신의 허약, 과로 및 풍한서습의 나쁜 기운 등 신체의 내외요인들에 의해서 결핵이 발병됨을 기술했고, 그에 따른 증상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노채증상에는 심폐간(心肺間)을 갉아먹는 특별한 벌레가 있다 해서 외부요인의 침입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 뒤 광해군 때 완성된 허준(許浚)의 『동의보감』 내경편(內景篇) 권3 충부(蟲部)의 노채조에도 언급된 바가 있다.
“노채를 또한 전시(傳屍)라 일컬으며, 이 병의 원인은 대개 혈기가 미정한 어린 시절에 주색으로 손상되고 그 열독(熱毒)으로 인하여 이물인 악충(惡蟲)이 만들어지며, 이 악충이 사람의 장부와 정혈(精血)을 파먹어 생기며, 오랫동안 환자를 시중한 사람도 이 나쁜 기운에 전염되어 기(氣)가 허해지고 배가 불러서 노채가 되며, 조상(弔喪)·문병 때에 의복·식기 등을 통해서 전염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미생물을 발견할 수 없었던 당시에 ‘노채를 일으키는 악충’이라고 표현한 체중충(體重蟲)은 결핵균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노채의 증상을 “몹시 마르고 입·코가 건조하고 눈알·입술이 붉어지고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없으며, 곧 죽을 환자라도 정신이 매우 맑고 좋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노채증상은 오늘날의 처지에서 보더라도 결핵의 전형적인 말기증상에 해당된다.
1790년(정조 14)에 이경화(李景華)의 『광제비급(廣濟秘笈)』에는 사람의 무덤에서 노채가 생긴다는 기록도 있다. 따라서 그 당시에 노채의 치료, 또는 예방법으로서 몸의 보양과 조화를 되찾는 데 힘쓸 것을 권장했고, 이 병이 전염된다는 생각에서 전염을 막기 위한 단염법(斷染法) 또는 금염법(禁染法)이 권장되었다 한다.
예를 들면 노채환자가 죽을 때에 체충이 다른 곳으로 도망가기 때문에 환자를 다른 장소로 옮겨놓은 다음, 환자가 기거하던 방안에 흰 개를 넣고 창문을 밀봉하여 방치했을 때 개가 살아 있으면 그 병이 개에게 옮겨가서 사람에게 전염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노채단염법이 실시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결핵이 결핵균에 의해서 전염됨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해도, 일종의 염병으로 사람에게 옮겨질 수 있음을 과거에도 알고 있었고, 그 대응책을 찾으려 힘썼던 것으로 생각된다.
결핵균이 1882년 독일인 의사 코흐(Koch,R.)에 의해 발견됨에 따라 결핵의 예방·치료법이 과학화되기 시작했다. 히포크라테스 이후 서양의학에서의 일반적인 결핵치료원칙은 안정과 충분한 영양공급이었다.
첫째로 안정은 과로·수면부족상태 등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하며, 가능한 한 오존이 많은 고산지대·해안요양소 등의 쾌적한 환경에서 심신의 휴식을 취하도록 했고, 증상이 호전될 경우에는 가벼운 운동을 하도록 했다.
둘째로 환자의 영양상태가 개선되면 결핵감염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식이요법으로서 고단백질과 풍부한 비타민이 포함된 음식을 섭취하도록 했다.
그 뒤 프랑스 등에서 발달된 각종 외과적 처치가 추천되기 시작했다. 결핵의 자연치유를 촉진하기 위한 허탈요법(虛脫療法)으로서 기흉(氣胸)을 만들어주거나, 흉곽정형술·기복수술(氣腹手術) 등이 성행하였는데, 이러한 허탈요법은 아직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때로는 부분적인 폐절제수술이나 만성농흉의 폐쇄수술도 권장되기도 하였다.
셋째로 파스(PAS)·아이나(INAH)·스트렙토마이신 등을 투여하는 화학요법으로 결핵을 치료하게 되었다. 결핵의 예방책으로서 결핵의 위험성과 감염·예방법 등을 계몽, 교육하고, 활동성 폐결핵환자의 격리치료와 접촉자나 의심되는 환자의 검출 및 환자 가족내 접촉자를 관리하며, 어린이에게는 투베르클린반응검사의 결과에 따라 BCG를 접종하여 면역력을 기르도록 하였다.
아직도 정설은 아니나, BCG접종 결과로는 부분적인 결핵방어력이 생기므로 활동성환자가 많은 사회에서는 투베르클린반응 음성자에게 집단접종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에서도 6·25전쟁 이후에 신생아의 비시지접종 조처가 대대적으로 실시되었다.
그 밖에 활동성환자를 줄이기 위한 조처로 가정치료기준을 만들어 전염성을 근절, 감소시키는 데 힘쓰는 한편, 결핵감염방지책의 일환으로 결핵에 의한 사망률·발병률·유병률 등 결핵실태파악특별조사가 전국적으로 시행된 바 있다.
우리나라의 결핵감염률은 1970년에 59%, 1975년에 58.5%, 1980년에는 57.6%로서 점차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나 선진국에 비하여 높은 수치이다.
연령별 감염률조사에서 5∼14세의 연령층이 점차 감소하는 경향을 나타내어 결핵감염률이 줄어들고 있음을 암시한다. 결핵발병자 수의 비율도 인구 1,000명당 1970년에 42명, 1975년에 33명, 1980년에는 25명으로 감소추세를 보였다.
일제 때까지만 해도 사망원인 가운데 결핵에 의한 사망률이 가장 높았으나, 1948년을 전후하여 화학요법의 도입, 결핵관리대책의 실효 등으로 결핵에 의한 사망률은 감소하는 추세이다.
195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주력해온 결핵관리방법은 전파관리, 저항력의 증강, 질병피해의 최소화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로 결핵전파를 차단하기 위해 실시하는 집단검진방법은 전파기회의 조기차단, 치료기회의 증가 등 여러 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으므로, 정부는 보건소·병원·결핵협회 등과 함께 엑스선촬영(X線撮影)·객담검사를 실시하여 환자의 발견에 힘썼다.
일단 발견된 활동성결핵환자는 격리치료·외과적 수술·거택(居宅) 치료 등을 통하여 결핵균전파기회 감소에 노력했다.
둘째로 밀집주거생활환경의 개선사업이 실효를 거두게 됨에 따라 영양상태의 개선과 더불어 저항력의 증강효과 등을 거두었다. 그리고 저항력증강을 위해서 범국민적으로 BCG접종사업을 전개하여왔다. 우리나라에서 BCG접종률은 1970년에 30.3%, 1980년에는 47.8%였고, 어린이의 BCG접종이 강화되어 면역력증강에 실효를 거두게 되었다.
셋째로 결핵관리를 위해서는 질병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했다. 결핵의 치료행위는 질병진행을 저지하여 환자의 건강회복을 도모하며 또한 균의 전파를 방지하게 된다.
활동성경증환자에 대한 화학요법은 거의 완벽한 치료효과를 보여왔다. 물론 약제에 대한 결핵균의 내성획득과 장기간 치료에 따른 치료의 부정확성 등의 문제점이 있다. 1980년 조사에 따르면 한 가지 이상의 약제에 대한 내성결핵균은 47.5%로 매우 높게 나타났기 때문에 복합적인 약제병용요법이 권장되어 왔다.
6·25전쟁 후까지 결핵은 질병과 빈곤의 악순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전염병이었다. 비참한 전쟁으로 야기된 국민경제의 파탄, 심신의 고통과 부담 등은 결핵에 대한 저항력을 약화시켰다.
더욱이 식품구입난에 따른 영양부족과 밀집하고 비위생적인 피난생활, 의료공급체계의 미비, 가재도구의 손실 등에 따른 개인위생관념의 저하 등에 의해서 결핵은 국민병 또는 망국병이라고까지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결핵퇴치사업의 강화와 국민생활수준의 향상에 따라서 결핵발병률과 사망률도 감소되었다. 정부의 결핵관리예산의 증가와 결핵협회의 크리스마스실 사업전개 등으로 결핵관리재원이 마련되어 결핵환자의 격리수용을 위한 병원·병사(病舍)가 확충되었다.
500여 보건진료소에 간이격리병사를 설치했고, 시도립병원·대학병원에 결핵격리병동을 운영하였으며, 많은 구호병원에서도 결핵환자를 수용, 치료하였다.
그 밖에 전국의 보건소·병원에서 증세가 가벼운 활동성결핵환자를 외래환자로 취급하여 치료하였고, 구역내 보건소에서는 결핵환자의 등록을 맡았으며 BCG접종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하였다.
또한, 전국보건소에 결핵전담요원을, 그리고 시도에는 결핵전문요원을 배치하여 결핵관리를 강화하고 엑스선검사와 객담검사의 양과 질을 높이도록 한 결과, 1960년까지 가장 많던 결핵이 이제는 전체사망요인 중에서 10위로 떨어졌다.
또, 1965년 전인구 중 5.1%의 양성결핵환자 가운데 중증환자가 0.6%나 되었으나, 1970년에는 양성결핵환자가 4.2%였고, 그 중에서 중증환자도 0.4%로 감소하였다.
그 뒤 1975년에는 3.3%의 활동성결핵환자 중에서 중증환자는 0.3%로, 1980년에는 2.5%의 활동성결핵환자 중에서 중증환자는 0.3%로 계속 감소하였다. 1995년 조사에는 결핵유병율 1%, 중증환자 0.00008%로 나타났다.
결핵은 의학·보건적인 대책만으로 근치될 수 없으므로 ‘사회적 질병’이라고 한다. 그 동안 결핵의 감염률과 발병률이 계속 감소하여 온 것은 의학·보건적인 대책이 성과를 거두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국민경제발전에 따른 생활환경 및 영양관리의 개선, 그리고 교육수준의 향상 등도 결핵관리향상에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결핵예방법」은 결핵을 체계적으로 예방, 치료, 관리하기 위해서 1979년 12월 28일 법률로 제정, 공포된 것이다. 결핵은 환자 자신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피해를 주므로 예방·관리를 효과적으로 하고, 나아가 국민보건의 향상과 공공복지의 증진을 목적으로 이 법이 제정되었다.
본문 45조와 부칙으로 구성된 이 법의 주요 내용은, 첫째,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사업 또는 사업자에 종사하는 자, 각급학교의 학생·교직원, 후생 또는 자선기관에 수용되어 있는 자 및 그 직원, 교도소·소년원에 수용되어 있는 자, 그리고 공무원 등은 그의 사업주·학교장이나 시설의 장 등이 연 1회 이상 정기 건강진단을 실시하도록 하였다.
둘째, 건강진단은 보건사회부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투베르클린검사·엑스선검사·객담검사 등의 방법으로 실시하고, 건강진단실시자는 진단기록을 보존하여 진단을 받은 자가 기록의 사본교부를 요청할 때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반드시 교부해주도록 하였다.
또한, 신생아에 대해서는 출생 후 1년 이내에 결핵예방접종을 실시하도록 하고, 시장·도지사가 예방접종을 실시하고자 할 때에는 미리 기일·시간·장소·예방접종받을 자의 범위 등을 정하여 1개월 전에 공고하도록 하였다.
셋째, 보건사회부장관은 결핵환자를 일정기간 동안 접객업 기타 공중과 접촉이 많은 업무 등에 종사하지 못하게 할 수 있으며, 동거자 또는 제삼자에게 결핵을 전염시킬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환자나 보호자에 대해서는 일정기간 결핵병원에 입원할 것을 명할 수 있도록 하였다.
결핵의 예방·퇴치사업을 민간차원에서 효과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결핵예방법」 제32조에는 대한결핵협회를 설립하여 이를 법정단체로 하도록 하였고, 크리스마스실의 판매 등으로 운영재원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