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진티푸스 (typh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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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진티푸스 리케치아 감염으로 발열과 발진을 수반하는 감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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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발진티푸스는 발진티푸스 리케치아 감염으로 발열과 발진을 수반하는 감염병이다. 제3급 법정 감염병의 하나이다. 1899년(광무 3) 8월에 발효된 「전염병예방규칙」에 ‘발진질부사’라고 명명되면서 독립된 감염병으로 분류되었다. 『삼국사기』·『고려사』·『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에서 기근과 함께 발생한 역질은 발진티푸스였을 가능성이 크다. 1960년대 이후에는 발진티푸스가 발생하는 일이 없어지게 되었다. 발진티푸스의 급격한 감소는 우수한 살충제의 보급, 예방주사의 보편화와 개인 위생 수준의 향상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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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발진티푸스 리케치아 감염으로 발열과 발진을 수반하는 감염병.
내용

제3급 법정감염병의 하나이다. 흔히 장티푸스재귀열(再歸熱)과 혼동되어 왔으나, 19세기 후반부터 점차 세균학적으로나 임상적(臨床的)으로 감별되기 시작하였다.

이 병은 서양에서도 감옥에 수감된 죄수에게 많이 발생한다고 하여 감옥열(監獄熱, jail fever), 전쟁에 따라 많이 발생한다고 하여 전쟁열(戰爭熱, war fever), 그리고 기근(饑饉)에 수반해서 발생하는 감염병이라는 뜻에서 기역(饑疫, famine fever)으로 명명된 일도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제1차 세계대전 중, 그리고 러시아혁명의 사회적인 혼란기에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이 병으로 사망했다. 우리나라 문헌에서도 기근과 역질(疫疾)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발생했으며, 이와 같은 역질은 대개 발진티푸스였다고 추정된다.

이 병이 우리나라에서 독립된 감염병으로 분류된 것은 1899년(광무 3) 8월에 발효된 「전염병예방규칙(傳染病豫防規則)」에 발진질부사(發疹窒扶私)라고 명명됨으로써 비롯되었다. 따라서 독립적으로 다루어 그 발생소장(發生消長)을 분명하게 나타내기는 어려우나 대개 기근과 함께 발생된 역질은 크게 보아 발진티푸스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삼국사기』 · 『고려사』 · 『고려사절요』,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등에 보면 역질은 언제나 기근 또는 사회적 불안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발생했음을 엿볼 수 있다. 예컨대, 796년(원성왕 12)에 기역이 심하여 창고를 풀어 진휼(賑恤)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오고, 873년(경문왕 13)에도 봄에 크게 민기(民饑)하여 역질이 생겨나 이를 진휼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또한, 『고려사』에 따르면 1255년(고종 42) 3월에 크게 흉년이 들어 백성이 많이 죽고 겨울에 눈이 오지 않더니 경성(京城)에 대역(大疫)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기록으로 미루어 우리 나라에서도 감염병의 장기설(瘴氣說) 내지 우주설(宇宙說)이 통용되어 왔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감염병의 대유행은 기상의 이변이나 기근과 함께 발생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기근에 수반된 역질의 유행에는 순수한 영양실조나 기아로 인한 희생자도 있었으리라고 추측되지만 역시 불량한 사회 · 경제 환경에서 생겨나기 쉬운 감염병으로는 발진티푸스가 첫째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유사한 기록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1472년(성종 3)에 황해도에 악질(惡疾)이 크게 유행해서 여제(厲祭)를 지내고 악병(惡病)의 구료절목(救療節目)을 정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한, 그 원인은 극성(棘城)의 옛 전쟁터에서 유래되었다고 지적되어 있다.

역시 과학적인 미생물학(微生物學)이 발달되지 못했던 당시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악귀나 여귀(厲鬼) 때문에 악질이 생겨나고, 억울하게 전쟁터에서 죽은 원혼들 때문에 이와 같은 역질이 돌게 되었다고 믿었던 것은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사실로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 질병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는 많이 찾아볼 수있다.

20세기 이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계속 발생되어 왔으며 보건 통계에 의하면 1918년에 8,123명, 1951년에는 3만 2211명의 환자가 발생되었다. 구체적인 통계자료가 미비해서 계수적으로 제시할 수는 없으나 우리나라는 1945년에 가장 많은 환자가 발생한 후 점차 감소되어 오다가 6·25전쟁 후 대유행이 되었으나, 1960년대 이후에는 이 병으로 환자가 발생하는 일이 없어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급격한 감소 내지 병의 근절은 우수한 살충제의 보급, 예방주사의 보편화 등을 손꼽을 수 있으며, 개인 위생 수준의 향상과 아울러 병 발생이 없어지게 되었다고 믿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의 진주와 함께 발진티푸스를 예방하기 위해 가두의 행인에게 DDT를 살포한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발진티푸스 예방이 가장 큰 이유였으며, 집단 수용자에 대한 살충제 살포가 크게 그 효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병의 근절은 생활수준의 향상에 따른 개인 위생수준의 향상이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전염병관리』(권이혁, 동명사, 1989)
『조선의보』1(유일준, 조선의학회, 1936)
「발진티푸스 병독 증식에 관한 2·3연구」(김국성, 조선의학회, 1940)
「발진티푸스의 세균학적 연구」(유일준·기용숙, 조선의학회,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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