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아주 옛날부터 미생물을 이용하거나 부패 · 발효 및 전염병 등의 미생물에 의한 현상들을 보아왔지만, 미생물의 실체를 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에 레벤후크(Leeuwenhoek, Anton Van)가 현미경을 만들어 세균을 관찰한 뒤부터이며, 19세기에 들어와 호밀 · 밀 · 감자 · 누에의 곰팡이에 의한 질병이 알려졌다. 이것은 박물학적인 것이므로 미생물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미생물학의 기초가 마련된 것은 19세기 후반에 파스퇴르(Pasteur)가 부패 · 발효 · 질병의 원인을 실험적으로 증명하여 생물을 생물로부터라는 생물속생설(生物續生說, Biogenesis)을 제창함으로서 비롯되었다. 19세기 말에 코흐(Koch)가 특정세균과 특정질병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4대원칙 즉 코흐의 가설(Koch's postulate)을 제정함으로서 세균학이 탄생되었다. 이후 인류의 병원균에 대한 연구가 급속히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말 이바노스키(Iwanosky)가 담배모자이크병이 세균이 아닌 바이러스에 기인함을 증명한 것이 효시가 되어, 20세기에 바이러스에 의한 인류의 질병들이 속속 알려지게 되었다.
한편, 비노그라드스키(Winogradsky)와 배제린스키(Beijerinski)가 자연계에서 발효나 병원균이 아닌 각종각색의 기능을 가진 세균 즉, 질소고정세균 · 질화세균(窒化細菌) · 황산화세균 · 광합성세균 · 철세균 등을 순수분리하여 그 기능을 밝힘으로써 바이러스 · 세균 · 곰팡이 · 조류를 대상으로 그 생명현상을 연구하는 기초학문으로서의 미생물학이 태동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미생물학의 기초학문의 분과로서 미생물 분류학과 미생물 생태학이 터전이 마련되었다.
1900년대 초에서 1940년까지는 미생물 세포의 생리와 세포 내에서의 물질 대사경로 및 이를 촉매하는 효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1941년에 비들(Beadle)과 타툼(Tatum)이 1유전자-1효소설(One gene-one enzyme theory)을 제창하였다. 1944년에는 아베리(Avery) 학파가 세균의 유전적 형질이 DNA로 구성된 플라스미드(plasmid)에 의하여 변하는 것임을 밝힘으로써 유전물질의 화학적 본질이 DNA임을 증명하였다. 이는 미생물생리학과 미생물유전학이라는 새로운 전문분야를 탄생시켰을 뿐만 아니라 생물의 생명현상을 탐구함에 있어서 미생물의 중요성을 크게 부각시켜 기초 미생물학의 급격한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다.
1953년에 왓슨(Watson)과 크리크(Crick)가 염기쌍이 두 가닥의 나선으로 배열된 DNA의 구조를 밝힘으로서 DNA의 복제와 돌연변이 기작을 분자수준에서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어 자연스럽게 분자생물학 분야가 생기게 되었다.
그 10년 후 DNA상의 유전정보가 트리플릿(triplet)이라는 3개의 염기쌍이 단백질을 구성하고 있는 아미노산의 한 종류를 암호화한다는 것과, 이 유전자의 암호는 전령(轉令, messenger) RNA(m-RNA)에 전달되고 이 암호에 따라 단백질이 합성된다는 사실이 해명되었다. 이어서 DNA에서 m-RNA의 합성이 조절되는 기작을 설명하는 오페론(operon)설이 제창됨으로써 분자생물학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1970년대에는 손상된 DNA를 수선하는 효소, RNA에서 DNA를 합성할 수 있는 역전사효소(逆轉寫酵素, reverse-transcriptase)를 비롯하여 DNA분자를 절단하고 이들을 연결하여 주는 각종 제한효소(制限酵素, restriction enzyme)와 연결효소(連結酵素, ligase)들이 발견되고, 유전자를 다른 세포에 효과적으로 운반할 수 있는 운반체를 세균의 플라스미드와 바이러스의 DNA로부터 개발하여 특정유전자의 DNA를 운반체의 DNA와 결합시키는 기술, 즉 유전자 재조합 기술이 개발되었다.
이 기술은 각종 유전자를 찾아내어 이들 유전자의 DNA상에서 위치를 밝히고, 나아가서는 이들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유전자와 발현조절기작을 해명하는 등의 기초생물학 분야의 연구와 성장호르몬과 같은 기능성 단백질을 대량 생산하거나 미생물과 동식물의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여 식량증산 및 미생물 산업에서의 신물질의 합성과 공정을 개량하려는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유전공학이 탄생되었다.
또한 자동 아미노산 서열 분석장치와 고성능의 X-선 회절장치가 개발됨에 따라 효소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과 3차구조는 물론이고, 이들이 지니고 있는 효소의 활성과 활성을 조절하는 부위를 밝히고 나아가서는 효소의 활성이 조절되는 기작을 해명하게 되었다.
1970년대 말에는 DNA의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방법이 개발되어 유전자의 구조와 기능과의 관계를 해명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1980년대에는 1970년대에 개발된 여러 방법과 고성능의 NMR을 이용하여 수많은 새로운 효소와 기능성 단백질 및 이들의 유전자를 찾아 그 구조와 기능을 분석함과 아울러 단백질과 단백질, 단백질과 핵산, 핵산과 핵산과의 상호관계를 해명함으로써 몇몇 외부환경과 세포 내부환경 변화의 정보를 수용 · 전달 기구를 분자수준에서 규명하였다.
생명현상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생명현상은 세포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하여 합목적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미생물의 분자진화계를 규명할 수 있는 분자생물학적 계통분류의 길이 열렸다. 이 시기에 일부의 암과 유전병을 비롯한 각종 미생물에 의한 발병과 면역현상에 대한 분자수준에서 그 기작이 해명됨으로써 이들의 예방 · 진단 · 치료에 괄목할 만한 발전을 가져다 주었다.
한편, 1980년 말에 시험관 내에서 유전자를 짧은 시간 내에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방법과 고성능의 DNA 염기서열분석기가 개발됨에 따라 1990년대에는 새로운 유전자의 발견과 그 구조 및 기능에 대한 연구 속도도 빨라지게 되었다.
세포 내에서 개개의 화학반응과 유전자 발현과 그 조절이 통합되는 기작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개개의 유전자에 대한 염기분석에서 미생물에 포함되어 있는 전체 DNA, 즉 게놈(Genome)에 대한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방대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현재 약 10여종의 미생물에 대한 게놈 분석이 완료되었으며, 이러한 작업은 사람의 게놈 분석에도 응용되고 있다.
이상과 같이 많은 유전자와 그 기능 및 이들의 통합된 발현과 그 조절이 속속 밝혀지고 있어서 생(生) · 노(老) · 병(病) · 사(死) · 진화 등 오묘한 진리가 하나하나 벗겨지고 있다. 이러한 기초과학적 지식은 의학 · 약학 · 농학 · 식품공학 및 화학공업 등의 산업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가치가 인정되어 21세기는 생물산업과 정보산업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기원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제전(祭典)이나 연화에 곡류를 누룩으로 발효한 교(醪 · 막걸리)를 사용하였으며, 삼국시대에 이미 양조기술을 일본에 전수한 바 있다.
술 다음으로 오래된 발효식품은 장류와 젓갈류를 들 수 있다. 삼국사기 통일신라 신문왕(神文王)조에 장(醬: 간장) · 시(豉: 된장) · 해(醢: 젓갈)가 폐백물목 중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중국의 ≪제민요술 齊民要術≫에 각종 육류로 만든 해(醢:육젓)와 각종 어류와 그 내장으로 만든 자(鮓)가 삼국시대에 있었다는 기록과, 일본 고서에 고구려로부터 장 담그는 법이 전래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장과 젓을 발효하는 기술이 발달된 것으로 추정할 수가 있다.
삼국통일 이후부터 양조기술이 발달하여 막걸리에서 청주와 소주가 만들어졌고, 조선조에 와서는 청주를 약주라고 부르고 그 기술도 다양화되어 삼해주(三亥酒)를 비롯한 20여종의 약주와 감홍로(甘紅露)를 위시한 10여종의 소주가 생산되었다.
장류도 많은 변천을 하였다. 즉 옛날의 메주는 콩과 밀이 2:1(일본 된장은 1:1)의 비율로 만들어졌으나 조선조에는 콩만을 사용하였고, 또한 ≪구황촬요 救荒撮要≫를 비롯한 수많은 문헌에 된장 · 간장 · 막장 · 전국장(戰國醬 · 청국장) · 약용장(藥用醬) 등 다양한 종류의 장류와 그 제법이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 중에 메주에 황의(黃衣)가 입혀지면 햇볕에 말리고 장을 담근 후에 숯을 띄우고 장독을 열어 햇볕을 쏘인다고 하였다.
오늘날의 미생물학적 지식으로 판단해 볼 때, 황의는 오늘날 우량메주의 종균으로 사용하는 황국(黃麴:Aspergillus orgzae)이라 짐작되고 햇볕에 말리거나 쪼이는 것은 곰팡이가 자랄 때 아플라톡신(aflatoxin)과 같은 독소를 무독화 시키고 잡균을 살균하자는 뜻이 있으며, 숯 또한 잡맛이나 독소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는 놀라운 지혜인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나라 장류는 일본이나 중국과는 달리 독자적으로 발전하여 온 우리 고유의 장인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에 우리 조상은 된장과는 달리 메주에 탄수화물과 고추를 혼합하여 발효함으로서 콩의 구수한 맛과 탄수화물의 당화에 의한 단맛 및 고추의 매운 맛이 나는 독창적인 고추장을 개발하였다.
우리 고유의 식품인 김치가 정확히 언제부터 유래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세종실록 世宗實錄≫ 오례조(五禮條)의 사직정배위찬실도(社稷正配位饌實圖)에 순저(荀菹:죽순김치) · 근저(芹菹:미나리 김치) · 청저(靑菹:무김치) · 구저(韮菹:부추김치)가 제사음식으로 나열되어 있고, ≪임원십육지 林園十六志≫에 저(菹)란 싱싱한 채소를 소금에 절여 찬 곳에서 익힌 침채류라고 정의하고 있어 저가 김치임을 알 수 있다.
≪규호시의방 閨壺是議方≫에 동화 · 마늘 등의 김치 담는 법이 기재되어 있고, 향신료로 마늘을 사용함으로써 양념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그 외에 ≪증보산림경제 增補山林經濟≫ 등의 많은 문헌에 따르면, 다양한 채소류와 어젓을 비롯한 육류 또는 과실 등과 마늘 · 파 · 고추를 비롯한 각종 향신류를 첨가하였고, 동치미 · 통김치 · 나박김치 · 총각김치 · 오이소박이 등 수많은 종류의 김치가 개발되었다.
우리 나라에 미생물에 대한 현대과학적 지식이 도입된 것은 조선조 말에 양의학(洋醫學)이 소개되면서부터이다. 한말(韓末)에 민족 비운기를 거치면서 서양문물과 함께 일본 청주와 맥주 및 일본 장에 대한 발효기술이 도입됨에 따라 우리 고유 술과 장류에 대한 개발의욕이 쇠퇴하기 시작하여 195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1960년대에 어려운 경제와 식량난으로 술의 주원료의 사용이 제한됨에 따라 각 원료에 알맞은 우수 발효미생물을 선발하기 위하여 주로 미생물을 동정하고 각 미생물의 효소생산능과 술과 장류의 일반성분 분석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수행하여 비록 외래 미생물이기는 하지만 우수 종균을 선발하여 누룩 · 분국(분말상태) · 액국(액체국)과 메주를 만들어 막걸리와 소주의 양조와 장류의 제조에 사용하였다.
우리 나라 경제가 좋아진 1970년 후반부터는 맥주 · 양주 · 포도주의 수요가 날이 갈수록 증가하게 됨에 따라 우리 고유주 뿐만 아니라 장류에 대한 연구도 더욱 줄어들게 되었다. 다만 우리 고유주를 찾자는 뜻에 따라 문배주를 비롯한 몇 종의 술의 제법이 복원된 것과 우리 간장을 공업화 한 것 외에는 양조공정의 개발을 위하여 아밀라아제 효소의 유전자를 효모에 도입하는 연구와, 미생물 또는 효소의 고정화에 대한 소수의 논문이 있을 뿐이다.
김치의 경우 1950년 후반부터 1960년 중반까지 김치에 대한 연구는 주로 김치의 발효 미생물, 김치의 성분분석, 제조방법, 저장 등에 대한 것이었다. 1960년 중반 이후부터 1980년대에는 김치의 대량생산과 유통에서 장기보존과 표준화에 대한 시도가 있었으나, 김치가 지방과 가정에 따라 사용하는 재료가 다르고 가정마다 독특한 맛의 김치를 즐기기 때문에 산업화되지는 못하였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다수의 우리 국민이 세계 각국으로 진출하여 김치의 우수성을 소개하고, 또한 김치가 성인병 예방과 치료에 좋다는 연구결과가 보도됨에 따라 외국에서 김치의 수요가 발생하였다.
또 우리 주부들의 사회진출로 김치를 사서 먹는 가정이 날로 증가함에 따라 가내공업 수준의 공장김치가 생산, 공급되었다. 이 가운데서도 우리 김치에 대한 8년간의 연구로 젖산을 생산하는 단일 세균으로 표준화된 김치를 생산하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이상에서와 같이 광복 후 응용미생물학 분야인 발효미생물에 대한 연구는 이 당시 응용미생물학 분야의 전공자가 희소하였던 까닭에 식품영양학자와 농화학자들이 주도하였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도 미생물산업이 탄생되고 외국에서 응용미생물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속속 귀국함에 따라 1973년에 한국산업미생물학회가 창립되었다.
1970년 후반에는 분자생물학적 지식의 도입으로 전통식품에 대한 연구는 쇠퇴하고 생리활성물질 · 산업신소재 · 무공해농약 · 미생물을 이용한 식물의 육종 등이 다양한 분야의 연구로 확대되었다.
1950년 후반에 일본과 대만에서 수입한 미생물로 조미료인 글루탐산염을 생산하기 시작하였고, 이어서 이노신산(inosinic acid)과 필수아미노산인 리신(lysin)을 발효 생산하게 되었다. 이 중에서도 글루탐산염과 리신에 대한 미생물균주의 육종과 발효공정의 개량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여 현재에는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가는 효율적 발효를 하고 있다.
1990년대에는 우리 나라 고유 균주에 의한 발효유의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외에도 식품에 이용되는 아밀라아제 · 프로테아제 같은 수많은 효소를 미생물로부터 생산하여 그 특성도 많이 연구하였다. 이 중에서도 미생물효소를 이용하여 올리고당(oligosaccharide)를 생산하여 다이어트 식품에 사용한 것은 주목할 만한 연구 내용이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전염병에 대한 기록은 백제 온조왕 4년(서기전 15년)의 백제기변(百濟飢變)인 것 같고,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는 단편적으로 대역(大疫)이라는 문구를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삼국사기≫ 신라 성덕왕(聖德王)조에 공주와 상주에서 금지(金芝)와 서지(瑞芝)를 나라에 바쳤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것들이 무슨 버섯인지 또한 약용인지 식용인지는 알 수 없다.
조선조에 와서 어떤 병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염병치성(染病熾盛)이라는 문구를 각종 문헌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동의보감 東醫寶鑑≫에 적리(赤痢) · 파상풍(破傷風) · 온역(瘟疫:장티푸스) · 단독(丹毒) · 두창(痘瘡) 등의 병명과 이의 증상 및 치료법이 기재되어 있고, 약재로서 복령(茯苓) · 저령(猪苓) · 목이(木耳) · 상이(桑耳:말똥진흙버섯) · 괴이(槐耳:곰보버섯) · 마고(磨菰:표고버섯) · 석이 · 송이 등도 기록되어 있다. 이어 균의 생태에 따라 지상에 나는 버섯을 균(菌), 나무에 나는 버섯을 심(蕈)이라 하였고, 균심독(菌蕈毒:버섯독)에 대한 처방을 아울러 기술하고 있다.
≪산림경제 山林經濟≫에는 버섯의 이름과 버섯독에 대한 처방 이외에 버섯배양법이 기술되어 있다. ≪시용약방균보 時用藥房菌譜≫에는 식용버섯 52종, 약용버섯 47종, 독버섯 12종 도합 111종의 버섯이름이 지방명으로 수록되어 있기도 하다.
우리 나라에 병원미생물에 대한 현대과학적 지식이 도입된 것은 1876년 수신사 수행원으로 일본에 갔던 박영선(朴永善)이 ≪종두귀감≫이라는 책을 지석영(池錫永)에게 전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지석영은 종두법을 습득하여 종두를 실시하였으며, 1899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뿌리인 관립 경성의학교가 설립되고 교장이 된 지석영은 일본인 교수와 병원균에 대한 강의를 하였다.
그 후 설립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세브란스 의과대학)의 전신인 제중원의학교(濟衆院醫學校)에서 미국인 교수들이 세균학 강의를 하였다. 이 세균학 강의의 내용에는 병원미생물은 물론이고 식품 및 발효미생물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1918년 경성의학전문학교 졸업생인 유일준(兪日濬)이 1926년에 모교의 교수로 부임하여 장내세균의 변이성, 폐렴균의 생물학적 특성, 특이성 항원항체반응, 결핵 진단법, 장기단백질의 특이성, 발진티푸스의 조직배양법과 시험관내에서의 배양법을 개발하는 등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1926년에는 경성제국대학 의학부가 설립되고 이 대학을 1932년에 졸업한 허규(許逵)가 모교에서 단개균배양법에 의한 결핵균의 발육양식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한편,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한 최영태(崔永泰)는 1933년부터 광복 직전까지 모교에 봉직하면서 결핵균의 증식물질은 핵산이며, 이것이 없으면 증식되지 않음을 입증하는 업적을 남겼다.
광복 후 유일준의 연구에 참여하였던 기용숙(奇龍肅) · 최영태 · 허규는 우리 나라 세균학계의 재건에 기여한 3대 거성이었다. 이들은 1946년에 대한미생물학회의 전신인 조선미생물학회(회장:허규)를 창립하고, 현재의 국립보건원의 전신인 조선방역연구소(후에 중앙방역연구소로 개명)에서 우리 나라 각종 전염병의 역학적, 세균학적 조사 연구 및 전염병 예방과 치료에 필요한 생물학 제재의 생산을 위한 학술적 연구를 계승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한편 유준(柳駿)이 1955년에 세브란스 의과대학(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교수로 부임한 후, 나병 연구를 하였다.
이후 1970년대까지는 주로 전염병의 분리 동정 및 역학 조사에 대한 연구였으며 1971년에는 대한바이러스학회가 창립되었다. 1980년대에 분자생물학적 기법이 우리 나라에 도입되면서 각종 병원균의 변이주의 항원에 대한 단클론항체 또는 다클론항체를 만들어 진단과 치료에 사용하게 되었으며, 독소의 순수분리와 그 기능, 세포 면역에 대한 연구가 싹트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중요한 업적은 유행성출혈열의 병원체인 바이러스를 발견한 것과, B형간염 바이러스의 백신 개발 등을 들 수 있다.
1990년대에는 1980년대의 연구내용에 더하여 암의 유발과 미생물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 및 새로운 항생제의 개발과 에이즈(AIDS)의 유전자 분석에 의한 백신 개발에 대한 연구, 버섯을 비롯한 각종 생물로부터 암과 성인병의 치료제와 면역조절인자에 대한 연구가 행해짐으로써 그 연구내용이 선진국 수준에 근접하는 성과를 얻게 되었다.
미생물학의 발전이 응용분야에서 출발하였듯이 우리 나라 순수 기초미생물학의 발전도 같은 길을 걸어야 하였다. 1946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 생물학과가 창설되었으나 응용과학에 비하여 기초과학의 중요성이 잘 인식되지 못하였던 연유로 미생물학 강좌조차 개설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선진국의 눈부신 기초미생물학의 발전에 영향을 받아 1956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생물학과에 미생물학 강좌가 개설되었고 기용숙 교수가 이를 담당하였다. 1955년에 홍순우(洪淳佑) 교수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에, 1959년에 김은수(金銀壽) 교수가 성균관대학교 생물학과에 부임함으로써 기초미생물학의 강의와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이들과 그 문하 대학원생을 주축으로 하여 한국미생물학회가 창립되었다.
1960년대에는 미생물로부터 산업적으로 많이 이용되는 각종 아밀라아제와 프로테아제를 포함한 많은 가수분해효소들을 순수분리하여 이들의 특성과 생산조건에 대한 연구가 행해졌다.
기초미생물 생리학적 연구는 1967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식물학과에 하영칠(河永七) 교수가 부임하면서 독립영양세균의 당대사 과정과 생리적 적응현상을 효소학적 방법으로 규명한 것과, 고려대학교 생물학과의 이영록(李永祿) 교수가 클로렐라(chlorela) 세포 내에서의 인산(燐酸)의 소장(消長)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1969년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 미생물학과(초대 학과장 홍순우)가 창설됨에 따라 미생물학 개론의 교육에서 미생물학의 각 분과, 즉 미생물분류학 · 미생물생리학 · 미생물유전학 · 미생물생태학 · 세균학 · 균학 · 바이러스학 등의 강좌가 개설됨으로써 각 분과의 전문지식을 교육할 수 있게 되었고, 1972년에는 한국균학회가 창립되었다.
1970년 중반부터 정부에서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을 하게 됨에 따라 돌연변이균주로 손상된 DNA의 회복유전자와 유전자발현을 조절하는 유전자를 분석하는 미생물유전학적 연구가 태동되었으며 수계 생태계에서 미생물 분포와 자연환경 또는 오염물질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미생물생태학적 연구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부각시켰다.
1980년대에 유전자 조작기술의 정착을 가져옴으로써 유전자 지도의 작성, 유전자의 클로닝(cloning) 등으로 본격적인 분자수준에서의 미생물유전학적 연구가 시작되어 유전자의 발현,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 정보의 전달, 세포의 분화, 효소의 작용기작 등의 연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1990년대에는 바이러스의 증식과 숙주세포로 침입 및 증식에 대한 유전자를 밝히고, 이들 유전자의 일부를 조작한 안전한 백신(vaccine)을 개발한 바 있고, 또한 에이즈의 백신 개발에 대한 연구가 행해졌다.
이외에도 유전자의 염기서열, 오페론, 보다 상위 수준에서의 유전자의 구조와 발현조절기작, 세포의 노화와 연관이 있는 자유라디칼(free radical)의 생성과 제거기작, 난분해성물질을 분해하는 효소와 그 유전자들의 클로닝, 각종 효소들의 유전자들을 분석하고 유전자들의 배열 또는 염기배열 순서를 바꾸어 새로운 물질을 합성하는 연구와 새로운 형질을 도입하여 새로운 미생물을 만드는 등의 국제경쟁력이 있는 연구들이 수행되었다.
한편, 미생물분류학의 경우 버섯과 같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그 유용성에 따라 우리 나라 이름이 붙여졌었다. 그러나 버섯을 자연분류법에 의한 학명을 붙이고 계통분류를 하게 된 것은 일제시대 이후부터이다.
해방 후 1956년에 식물학자인 이영로(李永魯) · 주상우(朱尙宇)가 33종의 버섯을 ≪한국식물도감 韓國植物圖鑑≫에 게재한 것이 처음이었다. 1972년에 한국균학회가 창립되고, 1978년에 ‘한국말 버섯이름 통일안’이 마련되었다.
1985년에는 이 당시까지 발표된 우리 나라 균류를 총정리하여 문교부 발행 ≪한국동식물도감≫ 제28권 고등균류편에 수록하였으며, 1987년과 1988년에 ≪한국산 버섯류 원색도감 I≫과 ≪원색한국버섯도감≫이 출간된 바 있다. 광복 후부터 1980년 말까지 버섯의 분류는 형태학적 분류였으며, 대부분이 미기록종(未記錄種)에 대한 것들이었다.
세균의 경우에는 1980년 말까지 분류학의 핵심인 계통분류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였으며, 오직 세균의 동정에 국한된 것들뿐이었다. 1990년대에 미생물분류에 분자생물학 기법을 도입한 다상분류법(多像分類法, polyphasic classification)으로 버섯과 세균을 새로운 계통분류체계를 세워 국제분류학회에 발표하였으며, 세균의 경우 Hongia 라는 신속을 비롯하여 5종의 신종을 발견하여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