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는 한자어로 석해(石蟹)가 표준어였고, 석차와(石次蛙)·날고(蝲蛄)·석오(石鰲)·기륙(虁陸)이라고도 하였으며, 우리말로는 예전부터 가재(가ᄌᆡ)라 하였다. 오늘날 방언으로 가아자·기·까자·까재·까지 등이 있다. 학명은 Cambaroides similis (Koelbel, 1892)이다.
몸길이가 큰 것은 65㎜에 달한다. 머리가슴은 등배쪽으로 약간 납작한 원기둥 모양이고, 배는 등배쪽으로 납작하다. 갑각의 등면은 매끈한 편이며, 등에 있는 활등 모양의 홈은 매우 뚜렷하다. 이마뿔의 기부는 넓으나 끝은 뾰족하고, 더듬이는 매우 길지만 작은 더듬이는 매우 짧다.
제1가슴다리는 크고 억세게 생겼으며, 집게를 이루는 손은 매우 크다. 제2·제3가슴다리는 가늘고 작은 집게를 이룬다. 살아 있을 때의 몸 등면은 적갈색이다. 깨끗한 계곡의 물이나 냇물에서 살며, 돌 밑에 숨기도 하고 구멍을 파고 들어가기도 한다.
포란기는 5월 중순에서 6월 초순 사이이고, 포란수는 50∼60개 정도이며, 암컷이 품은 알에서 깨어난 새끼는 암컷의 배에 안겨서 보호된다. 허파디스토마의 중간숙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동북부(평안북도·함경남도·함경북도)를 제외한 전역에 널리 분포하는데, 울릉도와 제주도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다. 만주의 서남부에도 분포한다. 우리나라 동북부에는 만주가재가 분포한다. 『동의보감』에는 “방게는 옆으로 가는데 가재는 뒤로 간다. 이것은 또 이상하게 산골짜기의 물속에서 산다.”라고 되어 있다.
『전어지』에는 “산골짜기 물속의 돌 틈에서 살며 작고 껍데기가 굳으며 붉은 놈이 가재다.”라고 하였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가재의 황(黃:머리가슴 속에 있는 누런 색의 간과 이자를 말함.)은 창저(瘡疽)가 오래 아물지 않는 데 바른다고 하며, 시골에서는 식용하기도 한다.
가재는 물이 얕은 작은 개울에서 손쉽게 잡히기에 시골에서 생장한 사람이면 어린 시절에 누구나 가재를 잡아본 경험이 있을 만큼 한국인과는 친근한 동물이다. 그래서 가재에 관한 속담·설화·민요 등도 많이 전하고 있다.
같은 부류끼리 친하다는 뜻으로 ‘가재는 게편이라.’고 하고 일의 순서가 뒤바뀌었을 때 ‘도랑치고 가재 잡는다.’고 한다. 또한 큰 세력을 믿고 버틸 때 ‘산 진 거북이며 돌 진 가재라.’는 속담을 쓰기도 한다.
가재에 관한 설화로는 ‘가재와 지렁이’라는 동물담이 전해진다. 본래 가재는 눈이 없고 띠가 있었고, 지렁이는 띠가 없고 눈이 있었는데, 가재의 띠와 지렁이의 눈을 바꾸어 가재는 눈이 있게 되었고 지렁이는 몸에 띠를 두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재는 눈을 달고 즐거워서 앞과 뒤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지렁이는 눈을 잃고 애달파서 “애드르르” 하고 운다는 것이다.
또한, 가재에 관한 민요도 전승된다. 경상남도 의령에서 채록된 「가재잡이노래」는 아이들이 가재 잡을 때 부르는 동요인데, 그 가사는 “산산골 가재야/머리풀고 나오이라/느그 어매 느 아배 다 죽었다/머리풀고 나오이라.”라고 되어 있다.
전라남도 해남지역에서 채록된 「가재타령」은 사람과 가재가 문답하는 형태로 전개되는 민요로서 가재의 자족적인 삶을 노래한 것이다. 이러한 속담이나 설화·민요 등에 나타난 가재를 통해 볼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재의 생태에 관해 숙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