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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목[龜鼈目]에 속하는 파충류의 총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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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목[龜鼈目]에 속하는 파충류의 총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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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문헌에 따르면 거북 또는 남생이는 ‘귀(龜)’라 하고, 자라는 ‘별(鼈)’이라 하였다. 거북 또는 남생이를 현의독우(玄衣督郵)·현령성모(玄靈聖母)·원서(元緖)·청강사자(淸江使者)·강사(江使)·동현선생(洞玄先生)·녹의여자(綠衣女子)·옥령부자(玉靈夫子)·현부(玄夫)·현갑(玄甲)·장륙(藏六) 등으로도 표현했다. 『물명고(物名考)』에서는 거북은 머리·꼬리 및 네 발을 한꺼번에 감출 수 있으므로 장륙이라 하였고, 우리말로는 거북·거복(居福)·남성(南星)이라 하였다.

자라는 단어(團魚)·수신(守神)·하백사자(河伯使者)·왕팔(王八)이라고도 하였고, 우리말로는 자라(ᄌᆞ라)·쟈라(쟈ᄅᆞ) 또는 쟈리라 하였다. 『물명고』에서는 동물에 해당되는 것을 유정류(有情類)라 하고, 이것을 우충(羽蟲)·모충(毛蟲)·나충(臝蟲)·인충(鱗蟲)·개충(介蟲)·곤충(昆蟲)으로 나누었는데, 거북류는 개충에 넣었다.

『재물보(才物譜)』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는 거북을 개충 중에서 으뜸가는 것이라 하였다. 또한 옛 문헌에는 거북 몸의 여러 가지 명칭과 기타 술어가 한자로 적혀 있고, 거북의 종류도 많이 기록되어 있다. 예컨대 『물명고』에서는 거북의 등껍질을 상갑(上甲), 배껍질을 하갑(下甲)이라 하였고, 갑의 가장자리를 염(冉), 거북이 머리를 든 것은 사(謝), 머리를 숙인 것은 영(靈)이라 하였다.

또 십귀(十龜)라 하여 열 가지 거북의 종류를 들었는데, 첫째는 신귀(神龜)로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으며 변화가 무상하고, 둘째는 영귀(靈龜)로 산에 있고 울 수 있으며, 셋째는 섭귀(攝龜)로 작고 뱀을 먹으며, 넷째는 보귀(寶龜)로 물속에 있다고 하였다.

다섯째는 문귀(文龜)로 갑에 그림과 글이 있고, 여섯째는 서귀(筮龜)로 시총(蓍叢) 아래에 있고, 일곱째는 산귀(山龜), 여덟째는 택귀(澤龜), 아홉째는 수귀(水龜), 열번째는 화귀(火龜)라 하여 이상한 생기가 있는 곳(本草綱目에서는 炎地라 함)에서 태어나는데 화서(火鼠: 상상의 동물의 하나)와 비슷하다고 하였다.

이 십귀 이외에도 여러 가지를 들었는데, 그 중 비희(贔屭)를 설명하기를 “주휴(蟕蠵)의 족속인데 우리나라의 동남해에 크기가 산악과 같고, 발이 사람 발과 같으며, 등 위는 온통 굴산을 이룬 거북이 바로 이 종류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이 책에는 자라에 관해서도 네 가지 술어와 네 가지 종류를 설명하였다.

술어 중 호란(護卵)은 거북과 자라가 알을 낳아 부화하는 것이고, 종류 중 능(能)은 세 발을 가진 자라, 원(黿)은 매우 큰 것인데 둘레가 한두 발이나 되며 능히 사람이나 말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거북이나 자라의 종류들 중에 우리나라에 없는 것이 많은 것은 중국의 문헌을 인용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거북에 관한 기록은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해귀(海龜: 거북)를 개류(介類)에 넣고 “해귀는 모양이 수귀(水龜: 남생이)를 닮았으며 배와 등에 대모(瑇瑁)의 무늬가 있다. 때로는 수면에 떠 나온다. 성질이 매우 더디고 느리며, 사람이 가까이 가도 놀라지 않는다. 등에는 굴껍데기가 붙어 있다. ……이것이 혹시 대모인가 하여 지방 풍속으로서 재난을 일으킬 것을 두려워하여 잡지 않고 아낀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명칭으로 바다거북임에 틀림없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귀변증설부대모(龜辨證說附玳瑁)’라는 항목이 있어 그 속에 “『탐라지(耽羅志)』에 대모가 우도(牛島)와 대정현(大靜縣) 가파도[蓋波島]에 나타난다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구는 우리말로 거복(居福) 또는 남성(南星)이라 한다.”는 기록도 있다.

거북은 세계적으로 12과 240종이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바다거북과[海龜科]의 바다거북, 장수거북과[革龜科]의 장수거북, 남생이과[石龜科]의 남생이, 자라[鼈]과의 자라 등 4종이 알려져 있다. 앞의 2종은 해산대형종이고 뒤의 2종은 담수산소형종이다. 거북목의 동물들은 몸이 짧고 등껍질과 배껍질로 싸여 있다. 양턱은 부리 모양을 이루며 각질의 집으로 싸여 있다.

이빨은 없고 눈꺼풀이 있다. 목은 8개의 목등뼈를 가지며 보통 껍질 속을 드나들 수 있다. 다리는 기본적으로는 오지형(五指型)이다. 온대·열대의 육상·민물·바다에서 사는데, 산란은 물에서 사는 것도 육상에서 한다.

바다거북은 갑의 길이 120㎝, 몸무게 300㎏에 달하는 것이 있다. 갑각의 등면은 푸른색 바탕에 회갈색 또는 암갈색을 띠고 있으며, 갑의 모양은 짧은 달걀 모양이다. 우리나라에는 남쪽에서 난류를 따라 남해안과 동해안에 오고 있다. 장수거북은 거북류 중에서 가장 큰 종류로 갑의 길이 250㎝, 몸무게 800㎏에 달하는 것도 있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 “자라찜을 왕비탕(王妃湯)이라 하는데 매우 맛이 좋다. 벽적(癖積: 뱃속에 뭉치 같은 것이 생기는 병)에 성약(聖藥)이나 그 배에 王자가 있어 그냥 고기와 같지 않고, 또 예전에 자라를 살려주고 보은을 받았다는 말이 전하니 먹을 것이 아니다. 비록 『맹자』에 물고기와 자라가 하도 많아 이루 다 먹을 수가 없었다는 말이 있으나 역시 먹지 않는 것이 좋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식용되고는 있었으나 약이성(藥餌性) 식품으로 사용된 듯하다.

『동의보감』에도 거북의 고기가 열기·습비(濕痺: 습기로 인하여 뼈마디가 쑤시는 병), 부인의 대하(帶下)를 다스리고 기(氣)를 더하며 부족(不足)을 보한다고 하였으며, 습장(濕瘴)·풍비(風痺) 및 발목을 삔 데에도 좋다고 하였다. 또 귀갑(龜甲)은 누하(漏下: 부인의 생식기 출혈)의 적백(赤白)과 징하(癥瘕)·해학(痎瘧)·오치(五痔)·음식(陰蝕)·습비를 다스리고, 귀판(龜板)은 구갑과 마찬가지로 음허(陰虛)·식적(食積)·발열(發熱)을 다스린다고 하였다.

거북의 오줌은 이롱(耳聾: 귀가 먹음)일 때 귓속에 떨어뜨리면 차도가 있다고 하였다. 별갑(鼈甲)은 징하·현벽(痃癖)을 주로 다스리고, 골절간(骨節間)의 노열(勞熱), 부인의 오색누하(五色漏下)와 이수(羸瘐: 수척하여 파리한 것), 소아의 겨드랑이 밑의 비견(痞堅)을 없애고, 온학(溫瘧)을 치료하며 타태(墮胎:인위적으로 유산시킴)한다고 하였다.

머리는 산후의 음탈(陰脫)과 탈항(脫肛)을 주로 다스리는데 태워서 재로 만들어 바른다고 하였다. 머리의 피도 역시 탈항에 바른다고 하였다. 또 귀갑은 귀중품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물명고』에서는 거북의 일종인 대모의 갑을 뽑아서 제자리에 오래 방치한 다음 칠보용(七寶用)으로 쓴다고 하였다.

『전어지(佃漁志)』에는 자라를 잡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포별법(捕鼈法)에서 “자라는 진흙·모래 속에 엎드리는 것을 좋아하므로 어부들은 집게[箝]로 찔러서 잡는데 열 번 중에 한 번도 실수가 없다.”고 하였고, 호명취별법(呼名取鼈法)에서는 “자라가 물속에 있으면 위에는 반드시 떠 있는 물거품이 있으므로 이것으로써 자라를 잡는다.”고 하였다. 이 방법들은 모두 자라의 습성을 이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거북은 오래 산다는 의미에서 용이나 봉황과 함께 상서로운 동물로서 인식되었다. 그리하여 집을 짓고 상량(上樑)할 때 대들보에 ‘하룡(河龍)’·‘해귀(海龜)’라는 문자를 써넣었다. 또 귀뉴(龜紐)라 하여 손잡이 부분에 거북의 모양을 새긴 인장을 사용하였고, 귀부(龜趺)라 하여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도 사용되었다. 또한 동작이 느린 동물로서 많은 이야기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구지가(龜旨歌)」라는 노래가 한역되어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거북은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首露王)을 드러내게 하는 동물로 등장한다. 또한 『삼국유사』 수로부인조(水路夫人條)에도 「해가사(海歌詞)」라는 노래가 들어 있는데, 이 노래에도 거북은 바다로 납치된 수로부인을 나오도록 하는 동물로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거북은 수신(水神)이나 주술매체 동물로서 고대 우리 민족에게 인식된 듯하다.

옛날 중국의 하(夏)나라의 우(禹)임금이 치수를 할 때 낙수(洛水)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마흔다섯 점의 글씨가 있었다고 하며, 이것이 ‘낙서(洛書)’라고 하는 바 ‘하도(河圖)’와 함께 『주역』의 근본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의 초기문자인 갑골문(甲骨文)도 거북의 등에 기록된 것이며, 점을 칠 때 쓰였던 복사(卜辭)였다. 오늘날에도 ‘거북점’이라는 것이 있어 귀갑을 불에 태워서 그 갈라지는 금을 보고 길흉을 판단한다. 이처럼 거북은 신령스러운 동물로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양 일대에서 신성시하던 동물이었다.

거북에 관한 설화는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조(金庾信條)에 ‘귀토지설(龜兎之說)’이란 우화가 인용되어 있다. 이 설화에서 거북은 동해용왕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토끼의 간을 얻으려고 육지에 나와 토끼를 업고 바다로 가다가 간을 두고 왔다는 토끼의 말에 속아 다시 토끼를 놓아주는 우둔한 동물로 나타난다. 또한 세간에 널리 알려진 ‘토끼와 거북의 경주’ 설화에서는 거북이 비록 느리기는 하지만 매우 끈기가 있는 동물로 등장하고 있다.

또한 거북은 신화나 전설에도 자주 등장한다. 강원도 평강군 유진면 유진리에서 전승되는 채씨소(蔡氏沼) 전설은 평강 채씨의 시조신화이기도 한데, 여기에 거북이 등장하고 있다. 즉 한 부잣집 처녀가 밤마다 찾아오는 푸른옷 입은 젊은 남자와 동침하여 잉태하였는데, 그 젊은이의 정체를 알아보려고 당사실을 꿴 바늘을 옷자락에 꽂아 확인한 결과, 마암소(馬巖沼)라는 연못에 사는 큰 거북임이 드러났다. 뒤에 처녀는 비범한 아들을 출산하였는데, 그 아이가 뒷날 정승이 되었고 평강 채씨의 시조가 된 채원광(蔡元光)이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내용이 창녕 조씨의 시조 조계룡(曺繼龍)의 출생담으로도 전해진다. 거북이 성씨 시조의 혈통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민족이 거북을 신성시하였음을 말하여 준다.

또한 평안북도·강원도 등지에서 전승되는 거북바위전설에서도 거북은 신비한 동물로 나타난다. 평안북도 영변읍약산동대(藥山東臺)에 거북바위가 있는데, 여기에는 구룡강(九龍江)의 용녀(龍女)가 죄를 짓고 거북으로 변신하여 인간계에 나왔다가 채약동(採藥童)과 사랑을 하여 부부가 된 죄로 용궁으로 가지 못하고 돌로 굳어졌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강원도 동해시 북평동에도 거북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스스로 움직이며 거북의 머리가 향하는 지역이 재수도 있고 풍년이 든다고 믿고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거북과 토끼가 호랑이를 물리친 이야기 등 많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거북에 관한 속담은 주로 거북의 형체에서 나온 것인데, 구하여도 얻지 못할 일을 할 때 ‘거북의 잔등이에 털을 긁는다.’고 하고, 얻을 수 없는 물건을 ‘거북의 털’이라고 한다.

또한 큰 세력을 믿고 버틸 때 ‘산 진 거북이며 돌 진 가재’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거북은 십장생(十長生) 중의 한 가지이며 민화의 소재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해귀도(海龜圖)·신귀도(神龜圖)·서귀공작도(瑞龜孔雀圖)·서귀도(瑞龜圖)·쌍귀도(雙龜圖)·현무도(玄武圖)·십장생도 등이 전해지는 민화들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규합총서(閨閤叢書)』
『동의보감(東醫寶鑑)』
『전어지(佃漁志)』
『지봉유설(芝峰類說)』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86)
『한국민화』(김호연, 경미문화사, 1977)
『한국민간전설집』(최상수, 통문관,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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