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는 조선시대 왕비나 왕세자빈이 궁궐로 들어갈 때 적의 위에 덧 입던 옷이다. 경의는 『국조오례의』에는 '경(景)'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단종실록』에는 대개 '명의(明衣)'와 같은 것이라고 하였으며, 『송자대전』에는 양삼(涼衫)이 옛날의 경의와 같다고 하였다. 『의례경전통해』에도 '경은 밝다는 뜻으로 경의 제도는 대개 명의와 같으며, 덧입힌다는 것은 길을 가는 도중에 먼지를 막아서 의복을 선명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함으로써 예복을 가리기 위한 옷임을 알 수 있다. 경의는 남사(藍紗), 남화문사, 남광사 12척으로 제작한다.
송나라 때 편찬된 『사물기원』에 의하면, "요즘 서울의 사인들이 조복(朝服)을 입고 말을 탈 때 참사(黪紗)를 덮었는데, 이를 양삼(涼衫)이라고 한다."고 하면서 옛날의 유법이라고 하였다. 이후 『송자대전』에도 경의는 양삼과 같은 것이라고 하며, 옛 사람들이 출입할 때 정복을 입은 다음 홑 포로 된 옷을 만들어 정복 위에 있었으며, 먼지를 막는다고 하여 양삼이 경의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했다. 한편 양삼은 『상변통고』에 천거받지 않는 자는 조삼(皂衫)도 괜찮지만 역시 양삼이 합당하다고 하면서 조삼보다는 양삼이 입기에 간편하고 비용도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하여, 양삼이 가볍고 저렴하여 입기 편하게 착용할 수 있는 옷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조선 왕실에서는 왕비나 왕세자빈이 궁궐로 들어갈 때, 겉에 입은 예복 위에 덧입음으로써 먼지를 막아 옷을 밝고 선명하게 하는 용도로 착용하였다.
경의는 양삼에서 출발한 것으로 남송시대 사대부의 백색 편복이었으나 희고 깨끗하여 흉복으로 착용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 왕비나 왕세자빈이 착용한 경의는 남사나 남화문사가 12척이 들어가는 것으로 홑으로 만들어 예복 위에 덧입는 양식이다. 송나라 때 삼은 장의의 일종으로 교임에 소매통이 풍성하고 품이 넓으며, 길이는 무릎이나 발목까지 내려오는 형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