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양문파(鞭羊門派)에 속하는 선승이다. 성은 밀양(密陽) 박씨. 호는 화담(華潭). 어릴 때부터 마늘 · 부추 등 오신채(五辛菜)를 먹지 않았으며, 18세에 출가하여 양주화양사(華陽寺)에서 월화(月華)의 제자가 되었다. 그 뒤 율봉(栗峯)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화악 지탁(華嶽知濯)의 법통을 이었다.
언제나 계행(戒行)을 청정하게 하였고, 29년 동안 장좌불와(長坐不臥)의 수도를 하였다. 한때 지리산에서 서봉 두옥(瑞鳳斗玉)에게 『선문염송(禪門拈頌)』과 격외선(格外禪)을 배웠으며, 강원도 철원군보개산(寶蓋山)의 석대암(石臺庵)에서 수년간 『화엄경』과 『열반경』을 공부하는 등 선교겸수(禪敎兼修)를 지향하였다.
또한 당시의 선사들처럼 유 · 불 · 도 삼교일원론(三敎一元論)의 사상을 가지고 유교 등의 전적을 두루 섭렵하기도 하였다. 그 뒤 해인사(海印寺)에서 좌선중 여래의 본성이 곧 자신의 본성임을 깨달았으며, 보문사(普門寺)에서 법회를 가져 궁중으로부터 향촉과 『능엄경』을 하사받았다. 1815년(순조 15)부터 여러 강원에서 조실(祖室)로 있으면서 화엄대회(華嚴大會)를 주관하였는데, 55군데에서 83회나 열어 대중을 교화하는 데 힘썼다. 1845년서울 봉은사(奉恩寺) 조실로 있다가 곧 동래 범어사(梵魚寺)로 내려가 은거하였다.
말년에는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현등사(懸燈寺)를 열반처로 정하고 선정과 지혜를 길렀으며, 제자들에게 열심히 정진수행할 것을 당부하는 임종게(臨終偈)를 남기고 입적하였다.
법맥은 청허 휴정(淸虛休靜) 이후 편양(鞭羊)풍담(楓潭)월담(月潭)환성(喚惺)완월(玩月)한암(漢巖)화악(華嶽)의 편양파 계보를 이었다. 저서로는 『천지팔양신주경주(天地八陽神呪經註)』 · 「게송육십칠품(偈頌六十七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