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휴계(浮休系) 벽암문파(碧巖門派)에 속한다. 속성은 안동(安東)권씨. 자는 붕거(鵬擧), 호는 월하(月荷). 아버지는 모현(慕賢)이며, 어머니는 밀양(密陽)박씨이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7세 때 하루에 1,000여 언(言)씩을 외웠으며, 시에도 능숙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11세에 어버이의 뜻에 따라 출가하여 팔공산에서 월암(月庵)의 제자가 되었으며, 그 뒤 침허(枕虛)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우기(祐祈)의 법을 이었다.
20세에 당(堂)을 열어 학인을 지도하였고, 유학자들과 교유하면서 필체나 시문으로 이름을 떨치기도 하였다. 한때 홍직필(洪直弼)이 그의 인품과 학덕을 높이 평가하고 환속하여 벼슬을 하도록 권유하였으나, 출가야말로 대장부가 할 일이라는 서신과 함께 승복을 벗을 수 없음을 천명하였다.
또 효심이 지극하여 자기의 토굴 곁에 따로 방을 마련하여 어머니를 봉양했으며, 노모의 눈이 어두워지자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여 시력을 회복시키기도 하였다. 울산석남사(石南寺)에 있을 때는 밤에 참선하고 낮에는 옥류계곡에서 물을 먹물로 삼아 글씨를 연습하여 명필이 되었다. 그 뒤 비문과 편액 등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특히 『천자문』을 초서로 써서 판각한 것은 유명하다.
60세 이후로는 시문이 수행정진에 방해가 된다 하여 붓을 놓고 염불과 참선에만 전념하였다. 77세로 가지산 석남사 연등정사(燃燈精舍)에서 입적하였다. 그는 부휴 선수(浮休善修)-벽암 각성(碧巖覺性)-모운 진언(暮雲震言)- 보광 원민(保光圓旻)-회암 정혜(晦庵定慧)로부터 탈원(脫遠)-선옥(禪玉)-위심(偉心)으로 이어지는 부휴계 법맥을 이었다.
저서는 모두 12권이 있었으나 『가산집(伽山集)』 4권만 전하며, 석남사에는 초서체 ‘천자문 판각’이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