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영암(暎巖). 법명은 임성(任性). 울산 출신. 어려서부터 향숙(鄕塾)에서 사서를 공부하다가 우연히 불경 중에 ‘제행무상일체공(諸行無常一切空) 즉시여래대원각(卽是如來大圓覺)’이라는 구절을 보고 발심하여, 1924년 양산 통도사(通度寺)에서 주청담(朱靑潭)을 은사로 삼아 출가하였고, 1930년 통도사 승가대학 대교과를 졸업하였다.
1933년 경상북도 울진 불영사(佛影寺) 주지에 취임하여 이청담(李靑潭)·김자운(金慈雲) 등과 함께 3년결사(三年結社)를 맺고 오후불식(午後不食)으로 천일정진을 성취하였으며, 1938년 오대산 월정사(月精寺) 재무를 맡았을 때는 일본인의 수탈로부터 사찰림을 수호하였고, 1946년 총무를 담당하였다.
1955년과 1960년 두 차례에 걸쳐 합천 해인사(海印寺) 총무를 맡아 김자운주지와 함께 해인총림을 중흥하였으며, 1957년 학교법인 해인학원 이사에 선임되었다. 1965년 해인사 주지에 취임하였고, 1964년 대한불교조계종 감찰원장, 1967년 규정원장, 1967년과 1979년에는 학교법인 동국학원 이사장에 취임하여 사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1974년에는 조계종 종회의장을, 1969년과 1975년에는 조계종 총무원장에 취임하였으며, 1978년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에 추대되어 종단의 법등(法燈)을 이어 밝히는 데 진력하였으며, 1980년 한국불교정화중흥회 의장으로 종단중흥의 대임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1984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으며, 1979년부터 1987년까지 동국역경원장에 재임하면서 고전 번역사업과 전통문화 창달에 공을 남겼다. 저서로 『마음없는 마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