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아의 창고를 지키는 사람에서 생겨나 묘지기·산지기·정자지기 등으로 분화되었다.
조선사회에서 고지기는 신분상 노속이었다. 대개 동리 밖에 거주하면서 동리 안에 있는 특정 친족집단의 공유 재산을 관리하고, 심부름을 하면서 친족집단에 예속되어 있었으며, 대대로 세습되었다.
그들은 묘나 마을 또는 문중의 문물·공유 산림에 소속되어 있는 사래답을 경작하여 생계를 유지하였다. 사래답에서 나오는 수확 가운데서 제수를 마련하고 남는 수확으로 그들의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들은 특정 친족집단의 성원에 예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언행에 있어서 나이어린 상전에게도 존대를 해야 하였고, 의복도 두루마기를 입거나 갓을 쓰지 못하고 바지저고리만 입는 등의 신분상의 차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