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로소(養老所)’라고도 한다. 물론 전통사회의 모든 마을들에 노인소가 다 있지는 않았으며, 또한 각 노인소마다 그 존재형태가 달랐다. 한편 마을의 사회적 여건이 변화함에 따라 노인소도 그 형태와 원래의 기능이 많이 바뀌었고 때로는 마을에서 사라지기도 하였다.
오늘날에는 이·동 단위의 마을에서 흔히 운영되고 있는 경로당을 노인소의 현대적 변용형태로 볼 수 있다. 노인소란 일반적으로 환갑을 지낸 마을 어른들의 모임이다. 특히 나이의 많고 적음이 사회적 권위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던 전통사회 마을에선 상당한 정치적 힘을 행사했던 기구였다.
노인소가 맡고 있던 중요한 일들로는 1년에 몇 차례에 걸친 시작(詩作)·천렵·소풍 등의 친목활동을 행하는 것과 마을에 관계된 모든 일에 관하여 마을사람들의 의사를 집약하고 결정하는 여론지도적 구실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 안팎의 행사와 사업 결정은 모두 여기에서 이루어졌고, 마을사람들 사이에 발생하는 다툼을 말리고 갈등을 푸는 것도 이 노인소를 거쳐서 이루어졌다.
또한 질서와 양속·도덕을 해치는 자도 여기에서 다스렸으며, 때로는 마을에서 쫓아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전통사회에서의 노인소는 단순한 자문기관이라기보다는, 안으로는 위계 질서를 세우고 이를 파괴하는 요소를 응징하여 결속을 도모하는 기구였다. 그리고 밖으로는 중재와 대변을 담당하는 기구의 구실과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 특성은 농촌사회의 모든 여건의 변화에 따라 구조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즉, 급속한 사회경제적 발전에 의하여 마을사회가 더 이상 자급자족 단위로 존재하지 못하게 되자, 오히려 외부세계와의 관계에 따라 마을사람들의 생활이 좌우되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변화에 민첩하게 적응하고 대처할 지식과 판단력이 중시됨에 따라 지도자의 연령이 비교적 낮아졌으며, 나이 많은 노인들은 그 마을의 전통적 윤리관과 도덕관의 상징으로서 자문의 구실만 담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민족항일기부터 뚜렷해졌다. 즉, 마을이 자치적인 단위에서보다 중앙집권적인 행정력의 관할 속에 들어감에 따라, 노인소와 같은 비공식적 기구의 정치적 권한은 상대적으로 약화, 축소되었다. 따라서 오늘날의 노인소는 별다른 강제력이나 구속력을 갖지 못한 단순한 자문기관이나 계(契)의 모임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