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작(水稻作:벼농사)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 노동집단인 농사(農社)나 농계(農契) 또는 두레의 공동체적 성격이 약화되어, 임금계약에 바탕을 둔 근대적인 노동청부로 변질된 협동노동관행의 일종이다.
고지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그 발생시기가 토지의 사유화가 촉진되고 화폐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하는 17, 18세기경까지 소급된다.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성행한 것은 1894년의 갑오경장 이후의 일이다. 즉, 이 시기에는 토지소유의 양극화가 진행되어, 한편으로 대토지 소유자가 다른 한편으로 영세농과 농업노동자층이 확대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농 이상의 농가가 농번기의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영세농이나 농업노동자와 농사작업시기를 미리 계약하여 금전이나 식량을 선대(先貸)해 주고, 그 대신 농번기에 노동력을 제공받는 방식으로 하여 고지제도가 성립하게 되었다.
1920년대의 조사에 의하면, 고지제도는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와 충청남북도를 중심으로 하여 전라남도 · 경상남도 · 경기도 · 황해도의 일부지역에서 성행하였다. 그러나 평안도 · 함경도 등 북한지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지역적인 분포로 미루어볼 때, 고지제도는 벼농사를 주로 하는 지역에서 성행한 노동관행임을 알 수 있다.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의 경우 전체 논 면적의 약 19%가 고지제에 의해 경작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제도가 농업노동력 동원방식에서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1949년 <농지개혁법 農地改革法>이 공포되어 농민들에게 토지가 유상분배(有償分配)되고 지주 · 소작 관계가 철폐되었다. 그 후 농민들간에 토지소유 규모의 차이가 점차 확대되면서, 법으로 금지된 소작제도가 음성적으로 부활함에 따라 고지제도도 다시 성행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고지는 지방에 따라 사용하는 용어가 다르다. 그러나 청부노동의 종류에 따라 산고지(散雇只) 또는 단고지(短雇只)와, 전고지(全雇只) 또는 장고지(長雇只)로 나눌 수 있다. 산고지 또는 단고지란 논갈이 · 모내기 · 김매기 · 벼베기와 타작 및 수확물 운반 등의 작업 중 한 가지 일만 고지를 맡기는 경우를 가리킨다. 전고지 또는 장고지란 모내기부터 수확 및 수확물 운반에 이르기까지 전체 농사일을 맡기는 경우를 가리킨다.
전고지 또는 장고지의 형태가 산고지 또는 단고지의 형태에 비하여 임금도 높은 편이며 더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한편 고지로 하는 작업의 횟수에 따라 일고지 · 이고지 · 삼고지 · 사고지 · 오고지 · 육고지 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즉, 모내기 혹은 경운작업만을 해주는 것을 일고지, 모내기와 김매기 1회를 해주는 것을 이고지, 모내기와 김매기 2회를 해주는 것을 삼고지, 모내기와 김매기 3회를 해주는 것을 사고지, 모내기와 김매기 3회 및 벼베기까지 해주는 것을 오고지, 여기에다 타작까지 해주는 것을 육고지라고 한다.
임금지급의 방법에 따라서는 순고지(純雇只)와 식고지(食雇只)로 나눌 수 있다. 순고지는 임금 이외의 현물급여가 없는 것으로 작업 때의 식사를 고지꾼이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다. 그런데 흔히 봉장고지(封腸雇只)라고도 한다. 식고지는 임금 외에 고지주인이 작업하는 날에 술 · 음식 · 담배 등을 제공하는 것으로 막고지(莫雇只) · 영고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후자는 전자에 비하여 현물급여의 비용만큼 계약임금 자체는 낮게 책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고지에는 개인 또는 단체가 작업을 청부하는 두 가지 형태가 있으나 후자가 더 일반적이다. 단체의 경우 그 규모가 5∼15명 정도가 보통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40∼50명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고지를 주는 사람을 고지주인 또는 고지주문인이라 하고, 고지를 맡아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을 고지꾼 또는 고지청부인이라고 한다.
고지주인은 대개 중농층 이상으로 비교적 경지면적이 넓은 사람인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때로는 다른 직업을 겸직하여 직접 경작에 종사하지 못하거나 가족 내에 농업노동력이 없을 경우에 고지를 주기도 한다. 고지꾼은 영세농 또는 농업노동자인 경우가 많으며, 고지주인에게서 신임을 받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대개 같은 동네에 거주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과거에 고지꾼은 성년남자들로 구성되고 부녀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남성노동력이 크게 감소하였기 때문에 고지꾼 중에 부녀자가 포함되는 경우도 발견된다. 고지꾼의 대표자를 통수(統首) 혹은 두목 · 모개비 · 대가리 등으로 부른다. 이 대표자가 고지주인과 고지계약을 체결하고, 청부받은 경작지의 작업에 대하여 모든 책임을 지고 고지꾼을 통솔한다.
고지꾼은 자기자신의 일은 못하더라도 고지주인이 원하는 시기에 반드시 노동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설사 고지청부 농가의 가구 주가 사망하더라도 그 가족 중에서 고지노동을 제공해야 하며, 때로는 품앗이를 하거나 품팔이 노동을 고용해서라도 고지계약을 준수해야만 한다.
고지임금은 경지면적당 작업종류를 고려하여 책정하는데, 전형적인 고지의 경우 마지기[斗落]를 계산단위로 하여, 그 면적에 모를 심고 3회의 제초작업과 벼를 베어서 주인집까지 운반해 주는 일을 모두 합쳐서 고지 한개라고 부른다. 한 사람이 논 200평의 농지를 경작하는 데는 모내기 1일, 김매기 3회 3일, 수확 1일, 수확물 운반 1일로 계산하여 6일 간의 노동일이 소요되므로, 고지 한개는 보통 6일 간의 노동에 해당한다. 그런데 고지노동에 대한 보수는 일반 품삯에 비하여 약간 낮게 책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품팔이 노동은 임시적이고 불안정한 데 대하여 고지노동은 확정적이며, 품삯은 보통 선불되지 않았다. 이에 반하여 고지노동은 새해 농사가 시작되기 전인 연말에서 3월 사이의 춘궁기에 식량의 선대나 화폐임금의 선불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빈곤한 농가에서는 서로 고지를 하려고 한다.
고지주인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일시적으로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농번기에 안전하게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으며, 또한 농번기의 임금상승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선호하였다. 전라남도의 3개 마을을 1965년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대상지역 가구 중 48.6%가 고지계약을 맺었고, 전체 논면적의 26.8%가 고지노동으로 경작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나라의 벼농사작업에서 고지제도가 여전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고지제도는 수도재배농업에서 일시에 집약적으로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경작의 특수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농민들 사이에 경작지 규모의 차이가 커지면서, 빈농층에서는 생계비 확보의 보조수단으로, 부농층에서는 효율적인 노동력 동원방식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전통적인 공동 노동조직인 두레가 해체되면서 대체수단으로 순전히 임금계약에 기초를 둔 집단 청부노동 형태로 발전한 것이 고지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