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의 둘레는 560m이며, 1977년 발굴조사 당시 체성(体城) 대부분이 무너지고 서벽 100m와 북벽 20m만 남아 있었다. 남아 있는 체성의 높이는 약 1.7∼2m 정도였고, 너비는 3.2m였다. 현재 서벽과 북벽 일부가 정비되어 복원되었다.
체성의 외벽은 황갈색 생토층 위에 황토와 잔자갈로 다지고 그 위에 너비 30∼40㎝, 두께 10∼16㎝ 정도 크기의 판석(板石)형 석재를 지대석(址臺石)으로 놓았다. 그 위에 1단으로 0.75∼1m 정도의 부정형(不定形) 자연 할석(割石)을 안쪽으로 들여 외벽을 쌓았으며, 돌의 바른면을 바깥으로 놓아 벽면을 정연하게 만들었다. 내벽은 부정형 할석을 이용하여 1열로 쌓고, 적심부(積心部)에는 흙과 돌을 채운 편축식 기법을 사용하였다.
최근 내부 조사를 통해 건물지(建物址) 1기, 석열 3기, 제철공방지 4기 등 다양한 유구(遺構)가 확인되었다. 특히 제철공방지에서는 제련로(製鍊爐)와 단야(鍛冶) 시설이 확인되어, 이곳에서 무기나 선박 건조에 필요한 각종 공구류를 제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포 만호성의 초축 시점을 고려해보면 이곳은 조선 전기의 관영 광업으로부터 17세기에 성행한 군수 광업과 관련된 곳으로 판단된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여수 선소와 고성 소흘비포성지가 있다.
성 내부에서 성곽이 초축된 조선 전기부터 성이 폐쇄된 조선 후기까지의 자기류와 기와류가 출토되어, 발포성이 계속 운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었다.
현재 성곽의 내부에는 민가가 들어서고, 밭을 경작하고 있어 자세한 내부 시설을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고지도와 발굴 조사를 통해 문지와 건물지 등을 살펴볼 수 있을 뿐이다. 문지는 3곳으로 동 · 남 ·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동문지가 발포리 675번지 주변, 남문지는 발포리 562번지 주변, 서문지는 발포리 622번지 주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헌(東軒)과 객사는 일렬로 배치되었는데, 동헌 터는 발포리 637-45번지인 교회 뒤쪽의 빈터로 1977년 발굴조사되었다. 동헌은 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확인되며, 동헌의 장축(長軸) 방향은 동북-남서로 정면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객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이루어졌으며, 발포리 636번지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선소는 현재 마을 동쪽 진입로 부근 타원형의 석축이 있는 곳으로 추정되며, 규모는 최대 장축 46.8m이다. 마을 입구 바닷가에 발포역사체험관이 설립되어 발포 만호성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