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장수리 고인돌

  • 역사
  • 유적
  • 청동기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과 개석식이 혼재된 고인돌. 지석묘.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서성훈 (국립광주박물관, 고고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고흥 장수리 지석묘 발굴 현장 미디어 정보

고흥 장수리 지석묘 발굴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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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과 개석식이 혼재된 고인돌. 지석묘.

내용

이 고인돌은 13기가 분포되어 있는데, 1962년부터 시작된 해창만 간척공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저수지 장수제(長水堤) 공사로 수몰되기에 이르러, 1984년 그 중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은 10기를 국립광주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장수리고인돌은 골짜기를 따라 1열로 배치되어 있으며, 매장주체부인 돌널의 축도 장수천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 조사된 10기 가운데 매장시설이 확인된 것은 8기인데, 굄돌이 있는 남방식 고인돌이 4기(제1·2·5·9호)이고, 나머지 4기(제3·4·6·8호)는 굄돌이 없는 개석식이었다.

제1호 고인돌의 뚜껑돌은 43t을 넘는 거대한 돌이어서 매장주체부인 돌널도 큰 돌들로 짜고 보강한 뒤 커다란 굄돌 4개로 뚜껑돌을 받치고 있었다. 그리고 남방식 고인돌 가운데는 제9호 고인돌과 같이 7개의 굄돌을 위석(圍石)처럼 돌려서 둥근 곽을 짜고 이를 매장시설로 한 것도 있었다.

개석식 고인돌의 대표적인 예는 제3호 고인돌이다. 돌널 위에 판석을 덮고 다시 뚜껑돌을 올려놓은 이중개석식 고인돌로 굄돌이 없고 돌널 위에 뚜껑돌을 덮었다. 출토유물은 혈암제돌칼[頁岩製磨製石劍] 1점이 있다. 제6호 고인돌에서 수습된 붉은간토기 조각들은 짧은 목을 가진 밑둥근단지로 보이나 제1·4·5호 고인돌에서 수습된 민무늬토기 조각들은 기형을 파악할 수가 없다.

의의와 평가

장수리에서 조사된 고인돌들은 남방식과 개석식으로 구분되는데, 전자는 두텁고 규모가 큰 뚜껑돌을 가지고 있는 반면, 후자는 판석처럼 엷은 뚜껑돌을 가지고 있어 비교된다.

참고문헌

  • - 『고흥 장수제 지석묘 조사』(서성훈·성낙준, 국립광주박물관,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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