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변의 시루뫼산성과 접해 있는 매봉산 기슭에는 100여 기의 폐고분이 무리지어 있다. 부여지방의 백제시대 고분들은 산성을 중심으로 주변 산록에 무리지어 분포하고 있는데 정암리고분군도 같은 양상을 띠는 유적이다.
정암리고분군은 봉토의 흔적이 전혀 없는 폐고분들로서 지상에 노출된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도굴의 피해도 예상 외로 커서 모두 파괴되어 있었다. 1980년 국립부여박물관 · 국립공주박물관의 합동조사에 의해 15기가 수습, 조사됨으로써 일부의 내용이나마 파악되었다.
정암리고분들은 널방〔玄室〕의 유형이 두 형식으로 구분되고 있다. 6각형을 이루고 있는 꺾임천장〔平斜天障〕식과 돌방 상단의 폭을 줄인 맞조임식으로 나누어진다.
꺾임천장식고분은 1·49·50호분이 있다. 다듬은 판석(板石)을 사용해 묘도(墓道)와 널길〔羨道〕을 갖춘 굴식〔橫穴式〕돌방무덤이다. 이 굴식꺾임천장돌방무덤은 백제 후기에 이르러 부여 지방에서 크게 유행되었던 무덤양식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부여 능산리동상총(東上塚) · 중상총(中上塚)과 능산리 동고분군(東古墳群) 1·2·3·4·5호분을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부여 현북리 · 상황리 · 홍연리 · 가신리 · 상금리 등 부여 일원과 공주 송학리 · 구암리, 논산 육곡리,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은선리 등 백제 고지(故地)인 충청 · 전라도 지방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널길을 갖춘 맞조임식고분은 25·44·45호분이 있다. 널방의 규모는 길이 243㎝, 너비 132㎝, 높이 132㎝로 판석과 깬돌〔割石〕을 섞어서 축조하였다. 이 맞조임식은 널방의 양 벽을 점점 위로 올라가면서 안으로 기울여 폭을 좁혀 쌓아 상단에 이르러서는 천장 폭이 좁아졌다.
그리고 25호분의 예와 같이 돌방바닥 내의 풍화된 암반을 파서 널방 밖으로 도랑을 내고 편평한 납작돌을 덮어 물이 널방에 고이지 않도록 한 배수시설도 확인되었다.
출토유물은 4·13·44호분에서 금동귀걸이 4점이, 6호분에서 뚜껑접시 1쌍이 수습되었을 뿐이다. 이는 백제 후기의 돌방무덤과 함께 고분문화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