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산(大興山) 지맥인 이 일대에는 100여 기 이상의 고분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동쪽 250m 지점에는 대흥산성이 위치하고, 그 주변 원당골·선박골·배암리 등에도 백제시대의 폐고분들이 무리지어 분포해 있다.
이 고분군은 1979년 10월 국립부여박물관과 국립공주박물관의 수습발굴조사에서 10기가 조사되어 그 내용의 일부가 알려졌다.
이곳은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과 구덩식돌방무덤[竪穴式石室墳]이 주류를 이룬다. 그리고 굴식강회도장돌방무덤[橫穴剛灰塗裝石室墳]과 구덩무덤[土壙墓]도 조사되었다. 굴식돌방무덤 중에는 꺾임천장[平斜天障]과 납작천장[平天障]의 돌방무덤들이 섞여 있는 등, 여러 가지 형태가 확인되었다.
제1호분은 부식된 암반층을 파서 만든 무덤구덩이[墓壙]내에 무덤길[墓道]을 내고 길이 224㎝, 너비 109㎝, 높이 121㎝의 돌방을 만들었다.
돌방은 속벽 상단의 양귀를 접어 육각형을 만든 다음 이에 맞추어 긴 벽을 짜올려서 꺾임천장을 이루었다. 널길[羨道]은 돌방의 동쪽에 치우쳐서 길이 49㎝, 너비 92㎝, 높이 88㎝로 짠 다음 깬 돌을 쌓아 막았다.
제5·6·7호분도 제1호분과 같은 굴식돌방무덤들이다. 특히, 굴식꺾임천장돌방무덤은 백제 후기(6, 7세기)의 전형적인 돌방구조로서 부여지방이 중심이 되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납작천장돌방무덤은 제2호분과 제9호분에서 조사되었다.
제2호분은 제1호분과 나란히 배치된 규모가 작은 구덩식돌방무덤이며, 제9호분도 제2호분과 같은 형식이다.
제3호분은 길이 208㎝, 너비 68㎝, 깊이 120㎝의 구덩무덤으로 제4호분과 비슷하다. 구덩무덤은 이른 시기부터 행해진 묘제이다. 조사된 예는 별로 많지 않으나 백제시대 전기간에 걸쳐 보편화된 일반묘제로 볼 수 있다.
제10호분은 깬 돌로 돌방을 쌓고 네 벽과 천장을 강회로 발라서 거친 벽면을 마무리 단장하였다. 이러한 예는 공주 송산리 제1호분과 제5호분, 금학동과 박산리고분, 부여 능산리 체마소고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