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괘(○○)는 음효(陰爻)로만 이루어진 순음괘(純陰卦)이다. 곤(坤)의 글자 뜻은, 토(土)가 십이지(十二支)에서 신(申)에 해당되므로 토와 신이 합하여 이루어졌다고 한다. 곤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건(乾)과 대응되는데, 건의 성질이 강건(剛健)함에 비하여 곤은 유순(柔順)함을 말한다. 즉, 건이 남성적이라면 곤은 여성적 성질을 대표한다.
설괘전(說卦傳)에서는 곤을 땅·어머니·신하·배(腹)·소 등에 비유하고 있다. 이러한 곤의 성질과 기능에 대해 괘사(卦辭)와 단전(彖傳)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곤은 원하고 형하고 이하며 암말의 정이다. 군자가 갈 곳이 있을 때 앞서면 미혹되고 뒤에 가면 얻을 것이니 이로움을 주장할 것이다.”, “서남쪽은 벗을 얻고 동북쪽에는 벗을 잃을 것이니, 정에 편안하면 길할 것이다.”
건괘의 괘사와 비교해볼 때 드러나는 것은 사덕(四德) 가운데 정(貞)을 암말[牝馬]로 규정짓고 있다는 사실이다. 말[馬]은 양물(陽物)로서 건괘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바로 곤이 건적(乾的)인 요소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뜻한다. 즉, 여성은 남성적인 것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순응해야만 자기의 올바른 기능을 발휘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사에서 건이 만물의 생명의 시원으로 설명되고 있음에 비해, 곤은 생육자로서 하늘을 좇고 계승하는 존재(順承天)로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괘사의 “앞서면 미혹되고 뒤에서 가면 얻는다.”든가, 효사에서 “왕사(王事)를 좇는다.”, “주머니를 여민다.” 등 곤의 모든 성질과 기능은 천도(天道)인 건에 대한 종속적 관계를 언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서남득붕, 동북상붕(西南得朋, 東北喪朋)’이다. 서남은 음방(陰方)이고 동북은 양방(陽方)인데, 음은 반드시 양을 좇아 그 붕류(朋類)를 떠나 잃어버려야 화육(化育)이라는 본래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전에서 “땅의 형세가 곤이니 군자는 후덕(厚德)으로써 사물을 싣는다.”고 했는데, 이것은 곤의 순후함용(順厚含容)한 성격과, 건의 자강불식(自彊不息)이라는 시간적 영원성과 대비된 공간적 무한성을 의미한다고 보겠다. 이익(李瀷)은 『역경질서(易經疾書)』에서 “곤도는 순승(順承)함을 덕으로 삼는다.”고 하여, 곤괘의 4덕은 곧 건괘의 4덕을 순승하는 것이며, 건을 용으로 상징하고 곤을 말로 상징한 것도 이와 같은 까닭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음을 대표하는 곤이 건에 대해 열등한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곤이 적극적으로 건과 관계할 때 비로소 생명이 창조된다. 조선조 말기 김항(金恒)이 『정역(正易)』에서 음을 억누르고 양을 높인다는 억음존양(抑陰尊陽)을 비판하고, 음과 양을 조율한다고 하는 조양율음(調陽律陰)을 주장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
건이 천도로서 지선지공(至善至公)한 정의(正義)를 의미한다면, 곤은 지도(地道)로서 후덕과 풍요의 공리(共利)를 상징한다. 시원으로서의 건과 생육자(生育者)로서의 곤이 정위(正位)할 때 올바른 가치관과 질서가 확립되며, 양자가 교감조화(交感調和)할 때 만물이 생성되어 생명력을 올바르게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