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龔直)은 후삼국 시대에 활동했던 인물로,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 '공직'조에 그에 관한 사항이 기록되어 있다. 시호는 봉의(奉義)이며, 사후에 고려 태조에 의해서 사공(司空)·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추증되었다. 그의 맏아들 직달(直達)과 딸은 후백제 견훤에게 인질로 갔다가 죽었고, 그 외에 금서(金舒), 함서(咸舒), 영서(英舒) 등의 아들이 있었는데, 함서가 후사를 이었다.
『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공직은 어려서부터 용감하고 지략이 있었다고 한다. 신라 말에 매곡현의 장군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궁예에게 복속하였다가 그의 처남 경종(景琮)이 918년(태조 원년) 임춘길(林春吉)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하자 후백제의 견훤에게 귀부하였다. 공직은 932년(태조 15)에 다시 고려로 투항하였다. 공직의 귀부로 견훤의 지배 영역이었던 충청도 남부지역이 고려의 영향권으로 넘어갔고, 이후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되었다.
공직의 귀부를 기뻐한 왕건은 공직을 대상(大相)에 임명하여 백성군(白城郡: 현 경기도 안성시)을 녹읍(祿邑)으로 주었으며, 아들 함서를 좌윤(佐尹)으로 삼고, 또 다른 아들 영서를 왕건의 친족인 정조(正朝) 준행(俊行)의 딸과 혼인시켰다. 고려에 귀부한 후 공직은 태조 왕건에게 후백제의 일모산군(一牟山郡: 현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의 공략을 청하였고 왕건은 이를 허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