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전기, 제1대 태조의 제4 왕비.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비의 고향 황주는 신라의 패강진(浿江鎭) 지역에 속하며 국경 수비의 육군이 집중되어 있던 곳이다. 태조는 이처럼 요충지에 속한 호족(豪族)의 딸을 왕비로 맞이함으로써 자신의 지원 세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태조 사후의 왕실 간 세력 다툼에서 황보씨계의 왕자·왕녀는 신명왕후(神明王后) 유씨계(劉氏系)와 혼인 관계를 맺으면서 왕실내의 유력한 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신정왕태후는 대종 욱과 선의왕후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친손자인 성종을 어려서부터 직접 키웠다. 성종의 누이인 헌애왕태후와 헌정왕후를 대목왕후 소생인 경종과 혼인시켜서 왕비로 삼았을 때에도 그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경종이 헌애왕태후에게서 낳은 어린 목종(穆宗)을 대신해서 성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성종이 다시 목종에게 왕위를 넘겨준 것도 선정왕태후를 중심으로 한 혈연적 유대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헌정왕후 황보씨는 경종의 사후에 태조와 신성왕태후(神成王太后) 김씨(金氏) 사이에서 태어난 안종(安宗) 욱(郁)과 사통하였는데,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이가 현종(顯宗)이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신정왕태후는 경종과 성종뿐만 아니라 목종과 현종의 왕위계승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 김창현, 『광종의 제국』 (신서원, 2008)
- 정용숙, 『고려왕실 족내혼 연구』 (새문사, 1988)
논문
- 김선미, 「고려전기 왕위계승연구」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22)
- 류선영, 「고려 태조의 6왕후 연구」 (전북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13)
- 신수정, 「고려시대 신정왕태후 황보씨의 위상 변화」 (『여성과 역사』 23, 한국여성사학회, 2015)
- 이태진, 「김치양란의 성격」 (『한국사연구』 43, 한국사연구회,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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