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명칭은 과테말라공화국(Republic of Guatemala)이며, 해안선의 길이는 400㎞이다.
중앙아메리카의 멕시코 남쪽, 유카탄반도 아랫부분에 위치하며, 면적은 10만 8889㎢, 인구는 1491만 8999명(2015년 현재), 수도는 과테말라시티(Guatemala City)이다.
종족은 인디언이 54%, 메스티조가 40%, 기타 6%로 구성되어 있으며,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종교는 가톨릭교 70%, 개신교 30%이다.
커피·면화·설탕·육류 등 농업생산에 산업의 기반을 두고 있으며, 2014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587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3,716달러이다.
이 나라는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제로서, 의회는 임기 4년의 단원제(158석)이다. 주요 정당으로는 과테말라공화전선(FRG), 대국가연합(GANA), 국가진보당(PAN), 기민당(PDCG), 국민중도연합당(UCN), 국민해방운동(MLN)) 등이 있다.
찬란한 마야문명을 꽃피웠던 과테말라는 약 300년간의 스페인의 식민통치를 거쳐 1821년 9월 15일 독립하였다. 이후 멕시코의 이투르비데제국, 1823년 중앙아메리카연방에 속하였다가 1839년 4월 중앙아메리카연방으로부터 이탈하여 단독정부를 수립하였다. 1847년 3월 과테말라공화국이 성립된 이후, 쿠데타와 군사정권이 연속되어 민주주의는 그 기초가 취약했다.
그러나 1996년 1월 출범한 아르쯔(Arzu) 대통령 정부 출범으로 과거 인권유린을 자행한 군부지도자 숙정 등 군부의 영향력 약화정책을 추진하였다. 또한 약 35년간 지속된 URNG게릴라와 정부군 간의 내전이 1996년 12월 역사적 평화협정을 통해 종식되고, 동협정사업이행으로 민주주의가 정착되어가고 있다.
대외정책은 좌경중립의 비동맹중립외교를 펴고 있으며, 1945년 유엔에, 1992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과테말라는 1948년 12월 유엔총회에서 우리나라를 승인하였으며, 1962년 10월 24일 국교수립에 합의하였다. 우리나라는 1974년 9월 과테말라에 상주대사관을 설치하였으며, 과테말라는 1977년 10월 주한 대사관을 개설하였다.
1983년 대한항공의 항공기피격사건이 있었을 때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총회에서 중남미 유일의 한국안 공동제안국이었다. 과테말라정부는 양국간 우호협력관계의 발전을 위하여 주일 대사가 겸임해오던 우리나라에 1984년 10월 상주대사를 임명하였다. 한편, 과테말라는 6·25전쟁 때 국제연합한국재건위원단(UNKRA)을 통하여 7,704달러 상당의 구호품을 보내왔으며, 우리나라는 과테말라에 대하여 1976년 2월 지진구호품, 1982년 수해구호품을 보내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경제원조를 제공하였다.
그밖에 우리나라는 1971년 11월 과테말라 상품전시회에 참가하였고, 1975년 11월과 1977년 11월에는 과테말라 주최 국제박람회에 참가하였으며, 기술협력의 일환으로 과테말라 기술연수생을 초청하여 훈련시켜 오고 있다.
한편, 1975년 10월 과테말라에 한·과테말라친선협회가 창립되었으며, 이 협회의 우리 나라 공관에 대한 협조 및 양국간 이해증진을 도모하기 위한 활동이 활발하다.
양국간에는 1977년 3월 무역 협정을 체결한 이래 1978년 9월 문화협정, 1987년 4월에 경제기술협력 협정, 1996년 9월에 사증면제 협정, 2000년 8월에 투자보장 협정, 2002년 8월에 봉사단 협정, 2002년 8월에 EDCF 협정, 2003년 12월에 외교관 및 관용여권 소지자에 대한 사증면제 교환 각서, 2004년 6월에 사증면제 협정, 2006년 2월에 범죄인 인도조약 비준서 교환, 2007년 7월에 일반여권 사증면제 협정과 교육정보화EDCF 공여 협정을 체결하였다.
우리나라의 대 과테말라 수출액은 2014년 현재 3억 2000만 달러로 승용차·편직물·합성수지·면사·화물자동차·건설중장비 등이 주종목이며, 수입액은 3억 2100만 달러로 당류·커피·과실류·고철·아연광·주류·알루미늄제품 등이 주종목이다. 현재 삼풍섬유 등 업체가 진출해 있고, 2787명의 한국민 교민과 7156명의 체류자가 있다.
한편, 북한은 과테말라와 2007년 9월 27일에 수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