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상은 높이 30㎝의 반가사유형 보살상으로,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일본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보살상은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올린 반가자세를 취한 보살상이며, 얼굴이 갸름하고 신체도 매우 날씬하다. 높은 산형보관과 치마의 옷주름선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간소하게 표현되어 있다. 보관의 정면에는 연꽃무늬의 중심부에서 돌기처럼 솟아 나온 꽃술 장식이 보인다. 보관에 이와 같은 장식을 붙인 형식은 사산조 페르시아의 왕관에서 발전하여 온 것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1962-1 지정)에서 진전된 보관 형식을 볼 수 있다.
이 장식 위에는 일월(日月)과 알 모양의 환문(丸文)을 조합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 문양도 페르시아 왕관에 비롯된 것으로 아프가니스탄 바미얀(Bamiyan) 석불의 배후에 새겨진 벽화와 서역의 벽화에 보이고 있다. 그래서 실크로드에 따라 동점(東漸)해 온 문양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일본의 몽전관음의 보관을 비롯, 신해년명(辛亥年銘)관음상의 보관에도 유례가 보인다.
보관에 숨겨진 보발(寶髮)은 쌍상투로 일본 주구사반가사유상(中宮寺半跏思惟像)에 나타나는 형태와 공통된다. 보발은 양쪽 어깨로 묶인 모양을 이루며 드리워져 있는데, 이는 백제의 보살상에서 많이 발견되는 모습이다.
얼굴은 전체적으로는 갸름하지만 볼은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다. 입술 끝이 살짝 들어가 삼국시대 불상에서 볼 수 있는 고졸(古拙)한 미소를 띠고 있다. 그러나 미소 띤 얼굴에 표현된 눈 · 코 · 입의 조각선은 매우 날카롭다.
이 불상은 화재에 의해서인지 표면이 거칠고, 오른손은 팔꿈치 이후를 목재로 보수하였다. 따라서 이 보살상의 손이 손바닥을 정면으로 향하여 펴고 있는 형태는 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며, 본래는 손가락을 뺨을 가리키는 형태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상의 내부는 허리 아래까지 비어있다. 그리고 뒷면의 대좌에는 균열이 있어 화재 때 불단에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대좌 아래에 또 하나의 앙련(仰蓮 : 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이 있지만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이 상은 신체가 세장하고 두 눈썹을 호선(弧線 : 활등 모양으로 굽은 선)으로 새긴 점, 그리고 고졸의 미소 등 삼국시대의 유물에서 자주 보이는 특징이 나타난다.
이 보살상의 오른쪽 다리에 U자형으로 겹겹이 드리워진 주름과 왼쪽 무릎 아래 옷자락이 위로 젖혀진 모양 등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1962-1 지정)의 것과 유사한 계통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세장한 신체 표현과 목에 걸친 끝이 뾰족한 목걸이 장식의 형태 등도 유사하여, 삼국시대의 보살반가상 계통 가운데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1962-1 지정)의 계통을 따르는 작품으로 생각된다.
이 보살상은 양식상 우리나라에서 제작되어 건너갔거나 혹은 당시 이주한 우리나라 사람들에 의하여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 상은 같은 우리나라 보살상으로 추정되는 니가타현[新瀉縣] 세키야마신사[關山神社]의 보살상과 공통적인 특색을 보여, 백제계 불상의 계보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 이상과 공통된 보살반가상의 하반신 부분이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 죠린지[淨林寺]에서 발견되어, 죠린지상 · 간소인상 · 세키야마신사상의 3작품의 분포를 통하여 한국에서의 불상이 건너간 경로를 살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