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9년(신문왕 9) 조위사(吊慰使)와 함께 일본으로 가 금동불상 등을 기증하였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지통왕(持統王) 3년 3월에 “신라에서 급찬(級飡) 김도나(金道那) 등을 보내어 영진인왕(瀛眞人王 : 天武王)의 상(喪)을 조문하였다.
아울러 학문승 명관(明觀)·관지 등을 보내었으며 별도로 금동아미타상·금동관세음보살상·대세지보살상 각 일구(一軀)와 채백금릉(綵帛錦綾 : 비단)을 보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신라 신문왕 9년의 일이다. 그러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기록이 없다.
이들은 이해 6월에 구주(九州)의 태재부(太宰府)로부터 일본에서 보내는 예물을 받아가지고 7월에 신라로 돌아왔다. 저술로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는 『열반경요간(涅槃經料簡)』과 『아비달마식신족론소(阿毘達磨識身足論疏)』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