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가기』는 『삼국유사』견훤조에 인용된 사가보첩류(私家譜牒類)의 서책인데, 이에 의하면 “진흥대왕의 비 사도부인(思刀夫人)의 시호는 백숭부인(白𪀚夫人)이니 그의 제3자 구륜공의 아들인 파진찬(波珍飡) 선품(善品)의 아들 각간(角干) 작진(酌珍)이 왕교파리(王咬巴里)를 아내로 맞아서 각간 원선(元善)을 낳으니 이가 아자개(阿慈介)였다.
아자개의 제1처는 상원부인(上院夫人)이고 제2처는 남원부인(南院夫人)이니 다섯 아들과 딸 하나를 낳았다. 장자는 곧 상보(尙父)인 견훤이요, 둘째는 장군 능애(能哀), 셋째는 장군 용개(龍蓋), 넷째는 보개(寶蓋), 다섯째는 장군 소개(小蓋)요, 딸은 대주도금(大主刀金)이다.”라고 하였다.
물론 이것은 조작된 선대세계(先代世系)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혈통상으로나 연대적으로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인용한 『이제가기』에 의하면 구륜공은 진흥왕의 제3자라 한다.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진흥왕의 아들로 동륜태자(銅輪太子)와 사륜왕자(舍輪王子)만 있고 구륜공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정사(正史)에 누락된 왕자도 있을 수 있으나, 연대적으로 구륜공이 견훤의 고조부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구륜공을 견훤의 시조로 칭한 것은 견훤이 왕을 칭함에 따라서 신라의 성골왕계(聖骨王系)에 그 혈통을 연결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