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공주목사, 황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시조에 나타나는 중심사상은 당시 세도정치의 문란과 부패상을 풍자하는 한편, 안빈낙도를 구가하는 그러한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성품이 당시의 시류에 어긋났음인지 1691년(숙종 17)에는 한때 죄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이 지나서는 다시 관리에 서용되는 혜택을 받았다. 그리하여 1697년에는 영부사(領府事)인 남구만(南九萬)이 왕에게 추천하여 음관이 되면서, 점차 승진하여 공주목사로 부임하여 한 고을의 행정을 주관하였다.
그러나 당시 암행어사인 김흥경(金興慶)과 이명준(李明俊)에 의해 탐관오리로 지적받기도 하였다. 그 뒤 다시 1711년에는 황주목사로 나갔는데, 사간원에 의하여 행정처리를 잘못한다고 탄핵을 받았으나 결국 무사하였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능성구씨세보(綾城具氏世譜)』
- 『청구영언(靑丘永言)』
- 『해동가요(海東歌謠)』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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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부친 : 『숙종실록』 21권, 1689년(숙종 15) 11월 4일. "전 승지 윤세기와 전 현감 구지정을 귀양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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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탄핵 : 『숙종실록』 50권, 1711년(숙종 37) 11월 27일. "간원에서 황주 목사 구지정을 개차하고 단양 군수 윤지임을 파직하기를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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