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의주부윤, 개성유수, 함경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1807년(순조 7) 홍문관부교리(弘文館副敎理)가 되고 1808년에는 서장관(書狀官)으로서 청나라에 건너가 양국 간의 현안문제를 수습하고 돌아왔다. 1810년 부교리로 있으면서 과거시험과 기타 국정 전반에 대한 개혁방안을 상소하여 왕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비단을 받았다.
1813년 강계부사(江界府使)로 나가 성실히 업무를 수행한 결과 가자(加資)되었으며, 그 뒤 의주부윤(義州府尹)과 개성유수(開城留守)를 거쳐, 1827년에는 함경도관찰사가 되었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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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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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개혁 상소 : 『순조실록』 13권, 1810년(순조 10) 10월 9일. "부교리 김계하가 상소하여 임금의 분발을 청하니 비단 10단을 내려 표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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