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시경(周時經) 등이 국문철자법의 통일을 목적으로 1896년 5월 서울 정동 독립신문사 안에 설치했던 최초의 국문연구회이다. 그 해 4월 7일 『독립신문』이 서재필(徐載弼)에 의해 최초의 상업신문으로 창간되자, 순한글신문인 『독립신문』의 국문표기를 합리적으로 통일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그런데 이 회는 설립 당시부터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하였으며, 아울러 운영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 회의 연혁에 관한 기록이 별로 없어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서재필 및 『독립신문』의 존폐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단편적이나마 주시경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이 회의 목적은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국문과 국문표기의 연구 및 그 통일에 있었고, 형태소(形態素)의 표기를 위한 새로운 받침의 채택이 그 구체적인 방안의 하나로 제기되었다.
이것은 뒤에 조선어학회의 「한글 마춤법 통일안」(1933)으로 채택되었지만, 당시로서는 전혀 호응을 받지 못하여 실패로 돌아갔다. 따라서, 이 회는 최초의 국문연구회로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해산에 관해서는 1898년(광무 2)에 폐지되었다는 설과 1906년 겨울에 해산되었다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