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08년(순종 2) 주시경(周時經)이 국어를 연구할 목적으로 조직한 학술단체.
개설
연원 및 변천
그 뒤 관립사범학교 교수, 부속보통학교 훈도, 사범학교 학생, 관립고등학교 학생, 사립학교 교사 및 학생, 그리고 기타 뜻을 같이하는 청년들이 다수 입회하여 학회의 규모가 커졌다. 그리하여 평의회를 구성하고 학회를 당국에 청인(請認)하자는 주시경의 동의가 있었으나, 1911년 9월 조선언문회의 창설과 함께 폐지되었다.
기능과 역할
현황
제1회 강습은 1909년 11월 7일부터 1910년 6월 30일까지의 일정으로, 상동청년학원(尙洞靑年學院)에서 열려 2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제2회는 1910년 10월에 열려 1911년 6월 27일에 끝났는데, 최현이(崔鉉彛: 최현배의 다른 이름) · 김두봉(金枓奉)을 비롯한 51명이 졸업했다. 장소는 제1회 때와는 달리 사동(寺洞) 천도교사범강습소였으나, 나중에 전동(磚洞) 보성중학교로 옮겨 실시하였다.
참고문헌
- 『주시경연구(周時經硏究)』(김민수, 탑출판사, 1977)
- 『주시경전집(周時經全集)』(이기문 편, 아세아문화사, 1976)
- 「개화기(開化期)의 국어연구단체(國語硏究團體)와 국문보급활동(國文普及活動)」(고영근, 『한국학보』30,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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