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검돌. 경기도 수원 출생. 저자의 유고 『온갖것』에서 자신을 ‘끗없는꼿속땅젊은손’, 유고 『말듬』에서는 ‘끗없는꼿속나라젊은손’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1910년대 주시경파(周時經派) 문법가로서 사전편찬과 국어연구에 공헌한 학자이다.
보성중학교(普成中學校)에서 배우고, 1911년 서북협성학교 후신인 오성학교(五星學校)를 졸업하였다. 이어 여름에 함경남도 함흥에서 교편을 잡고 조선어 및 조선사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1912년 여름에 조선어강습원에서 주시경에게 배웠고, 한때 경상북도 안동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3년 9월에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에서 주시경 주재의 조선어자전 편찬에 종사하기 시작하여 김두봉(金枓奉)·권덕규(權悳奎)와 함께 죽을 때까지 계속하였다. 1918년 9월부터 중앙학교 교원을 겸하였다.
유고는 1912∼1913년 경 비망록 『온갖것』, 1913년경 초고 『말듬』, 1907∼1917년 필사 『한글모죽보기』, 1916∼1919년 필사 『한글적새』 6권, 1918∼1919년 교안 『읽어리가르침』, 1920년 7월 『현금 조선문전』(신문관) 등이 전한다.
『온갖것』에는 희귀한 자료가 기록되었고, 『한글모죽보기』는 1907∼1917년의 국어운동사 자료로서 귀중하다. 특히, 『한글적새』는 미완성본이나 구조언어학적 자료집으로서 중요시되며, 『현금 조선문전』은 출판된 초급용 소문전으로서 널리 교재로 보급되었다.
주요저서인 『한글적새』는 주시경에게서 자라서 김두봉에게서 살찐 후주시경파의 문법이며, 최초로 우리의 기술문법을 시도한 문헌으로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