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지(重之), 호는 만회(晩悔). 권박(權博)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종묘서령 권덕유(權德裕)이고, 아버지는 예조판서 권극례(權克禮)이며, 어머니는 윤천석(尹天錫)의 딸이다. 큰아버지인 선공감역 권극관(權克寬)에게 입양되었다.
1589년(선조 22) 진사시에 합격하고,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예조좌랑이 되었다. 그 뒤 광해군이 모후를 서궁에 유폐하고 영창대군을 살해하는 등 정치가 혼란하여지자 관직을 버리고 야인생활을 하였다.
1618년에 고산도찰방(高山道察訪)이 되었다. 죽은 뒤 공조참판이 추증되고, 대전의 도산서원(道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만회집』·『연송잡기(然松雜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