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남양부사,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듬해 홍문관직제학에 임명되었고 이어서 부제학 · 우부승지 · 좌승지를 거쳐, 1542년에는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43년 형조참판, 이듬해 병조참판 ·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하고, 1546년(명종 1)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이듬해,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 때에 봉성군(鳳城君) 이완(李岏) · 송인수(宋麟壽) 등의 일파로 몰려 순천에 귀양갔다가 바로 평안도 맹산으로 옮겨졌다. 1553년 풀려나와 1561년 남양부사를 지내고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기사전문록(乙巳傳聞錄)』
- 『가정4년을유2월21일생원진사시방목(嘉靖四年乙酉二月二十一日生員進士試榜目)』(고려대학교 도서관[만송 貴 379 1522])
주석
-
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생원 급제 : 『가정4년을유2월21일생원진사시방목(嘉靖四年乙酉二月二十一日生員進士試榜目)』(고려대학교 도서관[만송 貴 379 1522])
-
주3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4
: 절영도 왜변 조사 : 『중종실록』 89권, 1538년(중종 33) 12월 16일. "삼공이 경차관을 많이 내보냄의 폐단에 대하여 건의하자, 모두 옳다고 답하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