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우(景遇), 호는 지족당(知足堂). 권효량(權孝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권상(權詳)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권희맹(權希孟)이며, 어머니는 여한경(呂漢卿)의 주1
1525년 생원시에 주2하고, 1528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주3하였다. 1530년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가 된 뒤 지평 · 정언 · 시강관(侍講官)을 역임하고, 1535년 홍문관교리 · 장령을 거쳐 1538년 사인(舍人)이 되었다. 이때, 절영도왜변(絶影島倭變)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경차관(敬差官)으로 파견되어, 이 사건이 성달순(成達順) 등에 의해 조작된 허위임을 밝히고 그 일당을 처벌하도록 주4
이듬해 홍문관직제학에 임명되었고 이어서 부제학 · 우부승지 · 좌승지를 거쳐, 1542년에는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43년 형조참판, 이듬해 병조참판 ·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하고, 1546년(명종 1)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이듬해,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 때에 봉성군(鳳城君) 이완(李岏) · 송인수(宋麟壽) 등의 일파로 몰려 순천에 귀양갔다가 바로 평안도 맹산으로 옮겨졌다. 1553년 풀려나와 1561년 남양부사를 지내고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