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흔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행부사과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군절(君節)
안락당(顔樂堂)
시호
문광(文匡)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48년(세종 30)
사망 연도
1492년(성종 28)
본관
연안(延安, 지금의 황해도 연백)
주요 관직
행부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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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행부사과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군절(君節), 호는 안락당(顔樂堂). 형조판서 김자지(金自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내자사윤(內資寺尹) 김해(金侅)이고, 아버지는 지중추부사 김우신(金友臣)이며, 어머니는 지청풍군사(知淸風郡事) 이계충(李繼忠)의 딸이다.

어렸을 때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크게 칭찬을 받고 사림의 촉망을 받았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68년(세조 14) 진사시에 1등으로 주1, 1471년(성종 2)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주2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에 임용되었다.

그 뒤 병조좌랑 · 홍문관교리를 지내고, 1479년 통신사의 서장관으로 대마도(對馬島)까지 갔으나 신병으로 인하여 되돌아왔다. 1481년 질정관(質正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홍문관응교, 1483년 전한(典翰)을 지내고 1484년 직제학에 승진하여, 충청도 천안 지방의 수령 · 만호(萬戶) 등의 불법행위를 주3

1486년 시강관(侍講官) · 공조참의에 이르렀다. 풍질(風疾)로 여러 차례 사직을 원하였으나, 1489년 행호군(行護軍)을 역임한 뒤 1490년 행부사과(行副司果)를 지냈다. 성품은 고결하고 지조가 있었으며 언행이 한결같았다. 문장은 율시에 능하였으며,

참고문헌

『세조실록(世祖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국조방목(國朝榜目)』
『안락당집(顔欒堂集)』
『허암유집(虛菴遺集)』
『용재집(容齋集)』
『해동잡록(海東雜錄)』
『허암유집(虛庵遺集)』
『모재집(慕齋集)』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주석
주1

진사 급제 : 『세조실록』 45권, 세조 14년(1468) 2월 25일

주2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四(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주3

천안 지역 사찰 : 『성종실록』 173권, 1484년(성종 15) 12월 15일. "김흔·최응현·강거효·김응기 등을 보내어 수령과 만호의 불법을 적발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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