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령(宜寧). 할아버지는 남을경(南乙卿)이고, 아버지는 부사(府使) 남적(南績)이다.
1423년(세종 5) 생원이 되고, 1427년(세종 9) 친시 문과에 을과로 장원급제하였다.
1431년 감찰을 역임했는데, 이때 어머니의 3년상을 마치기 전에 아버지의 권유로 결혼한 것이 문제가 되어 파직되었다. 이듬해 안숭선(安崇善)·정초(鄭招)·김종서(金宗瑞) 등이 학술에 밝고 역산에 정통한 것을 들어 다시 서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1438년 병조정랑을 거쳐 1449년 사성이 되고, 밀양부사·예문관직제학을 거쳐 1460년(세조 6) 봉상시주부가 되었다. 문명이 높았으며 일찍이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자녀를 교육시켰다. 특히 성리학에 정진하였으며 두보의 시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