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춘란 ()

회곡문집
회곡문집
유교
인물
조선 중기에, 성균관사성, 청송부사, 홍문관수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언회(彦晦)
회곡(晦谷)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39년(중종 34)
사망 연도
1617년(광해군 9)
본관
안동(安東)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성균관사성|청송부사|홍문관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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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성균관사성, 청송부사, 홍문관수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언회(彦晦), 호는 회곡(晦谷). 아버지는 증좌승지(贈左承旨) 권석충(權錫忠)이며, 어머니는 주1 세거지는 안동이다. 구봉령(具鳳齡) ·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특히 『주역』에 전심하였으며, 유성룡(柳成龍) · 정구(鄭逑) 등과 교유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61년(명종 16)에 사마시에 주2하고, 1573년(선조 6)에 문과에 주3, 성균관학유 · 학록을 거쳐 예문관검열 · 사헌부감찰 · 대동도찰방(大同道察訪) · 사간원정언 ·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등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안동에서 김윤명(金允明)의 의병에 가담하였다. 1595년 정월 사헌부장령을 거쳐, 3월 시강원필선(侍講院弼善), 6월 사간원사간에 임명되었다. 1597년 5월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에 임명되었으며, 6월 시강원보덕(侍講院輔德)을 거쳐, 그 뒤 성균관직강 · 사간원사간 ·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에 임명되었다.

1599년 성균관사성에 임명되었으며, 1601년 청송부사(靑松府使)가 되었다. 1604년 홍문관수찬, 1606년 다시 수찬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그 뒤 영천군수 · 홍문관부교리 등의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병을 핑계로 사양하고, 초야에서 글을 읽으며 여생을 보냈다.

스승 구봉령의 유문(遺文)을 교정하여 완고(完稿)로 만들었고, 사림에서 구봉령을 모시기 위하여 주계서원(周溪書院)을 건립하는 데 앞장섰다. 주계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진학도(進學圖)』 · 『공문언행록(孔門言行錄)』 · 주4 등이 있다.

참고문헌

『국조방목(國朝榜目)』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도산급문제현록(陶山及門諸賢錄)』
『선조실록(宣祖實錄)』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해동명신록(海東名臣傳)』
『회곡집(晦谷集)』
주석
주1

본관 및 부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주2

사마시 급제 : 『가정40년신유8월19일사마방목(嘉靖四十年辛酉八月十九日司馬榜目)』(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연민,고 920.051 가359]).

주3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주4

권춘란 저술 : 『회곡집(晦谷集)』 (한국문집총간)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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