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언회(彦晦), 호는 회곡(晦谷). 아버지는 증좌승지(贈左承旨) 권석충(權錫忠)이며, 어머니는 주1 세거지는 안동이다. 구봉령(具鳳齡) ·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특히 『주역』에 전심하였으며, 유성룡(柳成龍) · 정구(鄭逑) 등과 교유하였다.
1561년(명종 16)에 사마시에 주2하고, 1573년(선조 6)에 문과에 주3, 성균관학유 · 학록을 거쳐 예문관검열 · 사헌부감찰 · 대동도찰방(大同道察訪) · 사간원정언 ·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등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안동에서 김윤명(金允明)의 의병에 가담하였다. 1595년 정월 사헌부장령을 거쳐, 3월 시강원필선(侍講院弼善), 6월 사간원사간에 임명되었다. 1597년 5월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에 임명되었으며, 6월 시강원보덕(侍講院輔德)을 거쳐, 그 뒤 성균관직강 · 사간원사간 ·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에 임명되었다.
1599년 성균관사성에 임명되었으며, 1601년 청송부사(靑松府使)가 되었다. 1604년 홍문관수찬, 1606년 다시 수찬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그 뒤 영천군수 · 홍문관부교리 등의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병을 핑계로 사양하고, 초야에서 글을 읽으며 여생을 보냈다.
스승 구봉령의 유문(遺文)을 교정하여 완고(完稿)로 만들었고, 사림에서 구봉령을 모시기 위하여 주계서원(周溪書院)을 건립하는 데 앞장섰다. 주계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진학도(進學圖)』 · 『공문언행록(孔門言行錄)』 · 주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