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효백(孝伯). 호는 학호(鶴湖). 아버지는 이조참판에 추증된 김대현(金大賢)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충의위(忠義衛) 이찬금(李纘金)의 딸이다. 유성룡(柳成龍)의 문인이다.
1601년(선조 34)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13년(광해군 5)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사도시직장(司䆃寺直長)에 임명되었으며, 성균관전적·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단성현감(丹城縣監)으로 재임 중에는 선정을 베풀어 그 고을 백성들이 송덕비를 세웠다.
경상도도사·익산군수·예조정랑을 거쳐 사헌부지평·성균관직강이 되었으며, 제용감정(濟用監正)에 승진되었다. 특히, 문예에 조예가 깊어 동생 김영조(金榮祖)와 함께 영남에서 문명을 떨쳤다. 저서로는 『학호집(鶴湖集)』 4권이 있다. 영천(榮川)의 구호서원(鷗湖書阮)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