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유일재집』 등을 저술하였으며, 안동지역의 학문 진흥을 이끈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도산(陶山) 근처에 살면서 서사(書舍)를 지어 ‘유일’이란 편액을 걸어놓고 후진을 교육하였다. 문하에서 남치리(南致利) · 정사성(鄭士誠) · 권위(權暐) · 박의장(朴毅長) · 신지제(申之悌) · 권태일(權泰一) 등 훌륭한 인물들이 배출되어 당시 안동의 학문진흥의 창도자로 알려졌다.
이황이 죽은 뒤에는 여강서원(廬江書院)을 세우고, 백련사(白蓮寺)를 철거하여 유학을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데 노력하였다. 저서로는 『유일재집(惟一齋集)』 1권이 있다. 안동의 용계서원(龍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 『유일재집(惟一齋集)』
- 『천해정속고(天海亭續稿)』
- 『융경1년정묘사마방목(隆慶元年丁卯司馬榜目)』(한국국학진흥원[안동 광산김씨 긍구당(肯構堂[金世煥]) 종택])
주석
-
주1
: 사마시 급제 : 『융경1년정묘사마방목(隆慶元年丁卯司馬榜目)』(한국국학진흥원[안동 광산김씨 긍구당(肯構堂[金世煥]) 종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