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기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유일재집』 등을 저술하였으며, 안동지역의 학문 진흥을 이끈 학자.
이칭
  • 유일재(惟一齋)
  • 중온(仲溫)
인물/전통 인물
  • 본관광산(光山)
  • 사망 연도1588년(선조 21)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520년(중종 15)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한상갑 (전 관동대학교, 유학)
  • 최종수정 2026년 03월 03일
안동 유일재 종택 중 사랑채 정측면 미디어 정보

안동 유일재 종택 중 사랑채 정측면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유일재집』 등을 저술하였으며, 안동지역의 학문 진흥을 이끈 학자.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온(仲昷). 호는 유일재(惟一齋). 아버지는 성균진사 김주(金籌), 어머니는 순흥안씨(順興安氏) 안처정(安處貞)의 딸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67년(명종 22)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김언기는 일찍이 구봉령(具鳳齡)과 함께 청량산(淸凉山)에 들어가 10년을 기약하고 글을 읽다가 연고가 있어 구봉령보다 1년 앞서 돌아왔다. 산에서 내려오며 둘러보니 암애(巖崖)와 초목이 모두 읽던 책의 글자로 보였다 한다.

도산(陶山) 근처에 살면서 서사(書舍)를 지어 ‘유일’이란 편액을 걸어놓고 후진을 교육하였다. 문하에서 남치리(南致利) · 정사성(鄭士誠) · 권위(權暐) · 박의장(朴毅長) · 신지제(申之悌) · 권태일(權泰一) 등 훌륭한 인물들이 배출되어 당시 안동의 학문진흥의 창도자로 알려졌다.

이황이 죽은 뒤에는 여강서원(廬江書院)을 세우고, 백련사(白蓮寺)를 철거하여 유학을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데 노력하였다. 저서로는 『유일재집(惟一齋集)』 1권이 있다. 안동의 용계서원(龍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 - 『유일재집(惟一齋集)』

  • - 『천해정속고(天海亭續稿)』

  • - 『융경1년정묘사마방목(隆慶元年丁卯司馬榜目)』(한국국학진흥원[안동 광산김씨 긍구당(肯構堂[金世煥]) 종택])

주석

  • 주1

    : 사마시 급제 : 『융경1년정묘사마방목(隆慶元年丁卯司馬榜目)』(한국국학진흥원[안동 광산김씨 긍구당(肯構堂[金世煥]) 종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