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인민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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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에 창당되었던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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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47년에 창당되었던 정당.
내용

좌우합작을 정치노선으로 하여 여운형(呂運亨)을 중심으로 발족하였다. 1945년 11월 21일에 창당한 조선인민당과 1946년 11월 12일에 창당한 사회노동당에 이어, 1947년 5월 24일 여운형을 중심으로 세 번째로 창당한 정당이다.

여운형은 조선인민당·사회노동당 등과 같은 정당조직의 방향을 바꾸어 신당을 창당하기로 하고 신당조직위원회를 구성, 신민당(新民黨)·근로대중당(勤勞大衆黨)·해방동맹(解放同盟) 등을 포섭하여 좌익정당을 발족하기로 하였으나, 그 정치노선을 둘러싸고 난항을 거듭하여 합의를 보지 못하였다.

이에 여운형은 몸소 창당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강령 초안을 가결한 뒤, 당명을 근로인민당으로 결정하고 1947년 5월 24일 창당하였다.

당 조직은 위원장에 여운형, 부위원장에 백남운(白南雲)·이영(李英)·장건상(張建相), 그리고 중앙위원 72명, 기타 중앙감찰위원과 상임위원 등 모두 30명이었으며, 부서로는 사무국·조직국·선전국 등을 두었다.

강령으로 진정한 민주주의국가 건설, 계획경제제도의 확립을 통한 전 민족의 완전한 해방, 진보적 민족문화 건설과 전인류의 문화향상에 공헌할 것 등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다음의 4개 항을 첨가, 수정하였다. ①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에 의한 남북통일정부를 수립하되 민주주의 정당 및 사회단체는 자율적으로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공동위원회는 이에 협찬하며 원조할 것을 주장한다.

② 주요 산업의 국유화, 금융기관의 국유화, 주요 교통기관의 국유화 및 농업의 국유화를 주장한다. ③ 국고 부담의 의무교육제를 주장한다. ④ 민주적 노동법의 제정·실시를 주장한다. 근로인민당은 1947년 7월 19일 여운형이 암살됨으로써 사실상 와해되었다.

참고문헌

『해방삼십년사』Ⅰ·Ⅱ(송남헌, 까치, 1985)
『대한민국정당사』1(중앙선거관리위원회, 1973)
『몽양여운형』(여운홍, 청하각, 1967)
The Origins of the Koreanwar-Liberation and the Emergence of Separate Regimes,1945∼1947-(Chmings,B.,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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