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동경국립박물관(東京國立博物館) 오쿠라(小倉) 콜렉션 소장. 높이 16.3cm.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의 손에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들이 이 불상을 소개할 때 공주 부근에서 출토되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백제에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는 불상이다.
보관의 중앙에 반 타원형을 중심으로 상부와 좌우에는 꽃잎 장식이 보이며 2줄의 보관대(寶冠帶)를 뒷부분의 양쪽에서 돌기로 마무리하였다.
옆머리에서 내려진 보발(寶髮)은 어깨에서 원 장식으로 묶은 뒤 세 가닥으로 나뉘어 팔 윗부분을 덮고 있다. 이러한 보관 형식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1962-1 지정)의 것과 유사하다.
얼굴은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은 약간 뜨고 웃는 모습이 매우 부드럽고 온화하다. 목에는 단순한 목걸이가 굵게 묘사되었고, 위팔과 손목 역시 같은 모양의 단순한 팔찌를 끼고 있다.
하체는 두터운 의습(衣褶 : 옷주름)이 질서 있게 3줄씩 표현되어 있어 안정적이다. 즉, 반가한 오른쪽 다리 부분의 옷주름은 3줄의 음각선을 종으로 분명하게 표현하였다. 그 밑은 옷주름은 양각선으로 두툼하게 3줄을 횡으로 표현하여, 의도적으로 표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발목 부분에 옷 끝이 한 번 굵게 접힌 것도 특이한 예에 속한다. 또한 오른쪽 무릎 아래 부분은 흔히 약간 위로 뻗어 대좌보다 돌출된 것에 비하여 이 상의 오른쪽 무릎 아래 부분은 대좌에 내려진 치마 부분을 감싸고 있어 오른쪽 무릎이 매우 두터워 보인다.
이 상의 뒷면의 옷주름 역시 깊고 두텁게 조각하였는데 돈좌(墩座)에 표현된 주름과 변화와 조화를 이루고 있어 본상을 완전한 원각상으로 조각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또 허리 양쪽에서 내려뜨린 띠 장식은 돈좌 바로 위에서 한 번 돌려 다시 내려뜨렸다. 이 내림 띠 장식은 양쪽이 각각 다른 모양으로 대조를 이루며 매우 두텁게 조각되어 공간감을 보여 주고 있다.
공주 부근에서 출토된 이 반가사유상은 아주 작은 소형이지만 완전한 원각상으로로 의지를 보여 주고 있는 상이다. 보관과 보발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1962-1 지정)과 친연성을 느낄 수 있으나 좀더 입체적인 선 처리라든가 원각으로의 강한 의지는 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으로의 조형성에 접근하고 있다.
더군다나 소상으로서 얼굴의 구조와 옷주름의 과감한 표현은 이전의 소상들이 편평하고, 경직되어 나타난 점을 과감히 극복하고 있어 조형성에 있어 세련미를 느낄 수 있다.
이 반가사유상은 출토지가 불분명한 우리 나라 금동반가사유상 가운데 출토지가 백제 지역이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이전의 경직성을 탈피한 점에서 7세기 전후의 작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