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 삼존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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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유물
삼국시대의 금동삼존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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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의 금동삼존불상.
내용

동경국립박물관(東京國立博物館) 오쿠라(小倉)콜렉션 소장. 높이 6.8㎝. 본존불의 두광(頭光 :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 윗부분이 결실되었다. 하지만 거신(擧身) 광배에 본존불과 두 보살을 갖춘 일광삼존불(一光三尊佛) 형식의 불상이다.

일광삼존불 형식의 불상은 우리 나라에서도 금동신묘명삼존불(국보, 1962년 지정)을 비롯하여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癸未銘金銅三尊佛立像) 등 몇 가지 작례가 전해지고 있으나 이 삼존상처럼 본존불이 좌상이 아니라 입상인 점이 다르다.

광배(光背 :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의 중심부에 좌상인 주존을 배치하였다. 그 좌우 끝에 두 보살상을 주존에 비해 현저히 작게 표현하였다. 본존의 얼굴은 몸체에 비해 크게 표현되었고, 통통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소발(素髮 : 민머리)의 머리에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얕게 올려져 있다. 아래로 내리뜬 눈과 오뚝하게 표현된 콧날 그리고 다물고 있는 입 등이 위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입가의 미소는 얼굴과 불신의 비율에서 느낄 수 있듯이 아기 부처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또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의 대의(大衣 : 설법을 하거나 걸식을 할 때 입는 중의 옷)는 가슴 밑에까지 늘어져 있다. 그 아래로 U자형의 옷주름이 음각으로 몇 가닥 표현되었다. 그리고 엄액의(掩腋衣 : 大衣 안에 윗內衣로 입던 옷으로,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걸쳐 입는다.)가 부드럽게 표현되었다.

손 모양은 시무외·여원인을 묘사하고 있는데, 손 크기는 몸체에 비해 크게 표현되었다. 우협시보살은 두 손을 맞잡은 형태를, 좌협시보살은 오른손은 들고 왼손은 내린 형태를 취하고 있다. 모두 원통형의 빈약한 체구이다.

이 삼존불은 이전의 일광삼존불에서와 같이 양옆의 빈약한 보살상의 표현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다. 하지만 본존불의 표현에 있어서는 더욱 부드러워지고 원만해진 새로운 면이 나타나 있다. 이 삼존불의 형식은 이후 경상북도 지역의 마애불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본존불의 양감 있는 몸체와 시무외·여원인의 커다란 손 모양 그리고 통견으로 입은 대의가 U자형으로 터지고, 그 아래 옷주름의 표현, 아기 부처의 위엄 등이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삼존불은 산동 지방의 연원을 둔 보다 진전된 양식의 일광삼존불로서 석불이나 마애불로서 표현되는 삼존불 형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불상은 7세기 초에 주조된 금동불상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한국조각사』(문명대, 열화당, 1980)
「금동제일광삼존불의 계보-한국과 중국 산동지방을 중심으로」(곽동석, 『미술자료』 51, 국립중앙박물관, 1993.6.)
집필자
김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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