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 여래 입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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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유물
통일신라시대의 금동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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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통일신라시대의 금동여래입상.
내용

일본 나라현[奈良縣] 요시노[吉野] 지방의 고묘지[光明寺] 소장. 높이 24.4㎝. 현재 나라국립박물관[奈良國立博物館]에 위탁 보관 중이다. 이 불상이 처음 알려진 것은 1988년, 고묘지 주지인 무라오카[村岡 空] 스님에 의해서였다.

이 불상은 고묘지 뒤편 은봉산(銀峯山)의 핫코인[白光院] 진구지[神宮寺]에 모셔져 있던 본존불로 이 절이 화재로 없어져 버림에 따라 어느 시기엔가 말사(末寺)인 고묘지에 전해졌다고 한다. 무라오카는 이 불상이 헤이안시대[平安時代] 일본에 귀화한 신라계 후손들이 가져온 것이라는 점을 밝히는 논문을 쓰기도 했다.

화려한 연화대좌 위에 당당하게 서 있는 금색이 찬란한 불상이다. 납작한 나발(螺髮: 부처의 머리카락.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에 중앙에는 반원의 육계(肉髻: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얹혀 있다.

이마는 매우 좁으며 백호(白毫: 부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는 표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목구비의 표현이 뚜렷하여 약간 내리뜬 눈과 오뚝한 콧날 그리고 작지만 굳게 다문 입 등이 불상의 위엄을 더해 주고 있다.

목에는 선명하게 삼도가 표현되어 있다. 양쪽 어깨를 감싸고 자연스럽게 드리워진 통견(通肩: 어깨에 걸침)의 대의(大衣: 설법을 하거나 걸식을 할 때 입는 중의 옷)는 약간 오른쪽으로 여미어져 일정하게 사선 무늬를 이루고 있다.

또 주목되는 것은 양쪽 다리 위에 연속적인 U자형의 주름이다. 이러한 형식은 감산사아미타여래입상(국보, 1962년 지정)의 주름 형식에서 발달된 양식이다. 이런 옷주름은 번파식(飜派式) 옷주름으로 불리며 옷주름의 자연스러움을 입체감 있게 묘사한 것이다.

연화대좌는 불상과는 별도로 주조된 것이다. 8능형의 받침 위에 안상이 투각(透刻: 뚫새김)된 8각 기단을 얹고, 그 위에 다시 8능형의 뚜껑을 덮었다. 그 위에는 복련(覆蓮: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과 앙련(仰蓮: 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이 불상은 8세기 중엽 이상적인 불안(佛顔)에서 느끼는 위엄과 옷주름의 양감 있는 표현 그리고 연화좌에 보이는 화려한 귀꽃 묘사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 통일신라시대 불상 양식의 전성기인 8세기 중엽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신라하대 불상조각의 연구」(문명대, 『역사학보』 73, 1977)
집필자
김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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