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그룹 (Asiana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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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아시아나(2019년 이전전 광화문 사옥)
금호아시아나(2019년 이전전 광화문 사옥)
경제
단체
주식회사 금호를 중심으로 하여 형성된 일련의 기업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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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주식회사 금호를 중심으로 하여 형성된 일련의 기업집단.
내용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946년 박인천(朴仁天) 이 택시 2대를 운영하는 광주택시로 사업을 시작한 이후, 1948년 9월 광주여객자동차(현 금호고속)를 설립하여 버스운송사업에 진출한 것이 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광주여객자동차는 1961년 6월에 전남여객자동차를 흡수·합병하여 사세를 확장하였다. 1968년 10월에는 경부선 고속버스 사업인가를, 1971년 11월에는 호남선 고속버스 사업인가를 얻으면서 전국적인 고속버스 회사로 성장하게 되었다. 한편, 설립자 박인천은 운송사업과 함께 1960년 9월에 삼양타이어주식회사를 설립하여 타이어 시장에 진출하게 되었다. 삼양타이어는 국내 수요 충당과 함께 1965년 10월부터는 동남아시아지역에 수출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1968년부터 흑자경영을 이루게 되었으며, 1970년대에는 광주고속과 함께 향후 금호그룹을 형성하는 발판이 되었다.

이 두 회사를 기반을 1970년 일본의 미쓰이상사, 일본 합성고무주식회사와의 합작으로 한국합성고무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1972년 10월에는 종합무역상사인 금호실업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무역업에도 진출하였다. 금호실업 설립 후 그룹체제로 발전하면서 고속버스와 타이어를 발판삼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였다. 1973년에는 미국의 모빌석유주식회사와 합작으로 윤활유를 주로 생산하는 모빌코리아윤활유공업주식회사 및 금호전자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이 시기부터 금호는 지역기업의 수준을 넘어서 국내 굴지의 그룹으로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1974년에는 광주투자금융주식회사를, 1976년에는 금호산업주식회사와 금호화학주식회사를, 1977년 금호섬유주식회사와 금호건설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사업영역을 확대하였다. 이로써 12개 회사로 구성된 금호그룹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1979년 제2차 석유파동과 국내외적으로 불황이 겹쳐 금호전자와 금호산업은 금호실업주식회사로 흡수· 합병되었고, 1984년 삼양타이어와 금호실업을 합병하여 주식회사 금호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이 시기 금호는 육영사업에 투자하여 일반고등학교로 금호고등학교와 광주중앙여자중·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또한 실업고등학교로 금파화학공업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사업 활성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1986년 9월에는 미국 유니로얄(Uniroyal)사와 타이어에 대한 기술 제휴를 맺어 타이어 제조 기술의 전문화를 이룩하였다. 1987년 3월에는 금호타이어 서울판매 외 10개 판매사를 합병하여 타이어 영업망을 크게 확장하였다. 1988년에는 대한항공에 이어 제2 민항사업자로 선정되어 아시아나항공을 출범시키며 그룹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후 1990년대 초반에는 항공·타이어·고속버스 등을 중심으로 중국시장에 진출하면서 글로벌 경영체제 구축에 힘을 쏟았다. 국내적으로는 1991년 8월 스포츠용품 브랜드 ‘포즈(POSE)’를 출품하였으며, 1992년 2월에는 민항기 타이어 부문에서 미국 F·A·A 테스트에 합격하였다. 1992년 10월에는 45시리즈 타이어를 국내 최초로 개발하였고, 1994년 2월에는 ‘24ISO9001 인증’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1996년 2월에 주식회사 금호의 상호를 금호타이어㈜로 변경하였다. 아시아나항공·금호건설·금호타이어가 주력기업이었던 금호그룹은, 1998년 IMF 외환위기를 맞아 그룹의 부채비율을 낮추고 기업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하였다.

이어서 2004년에는 그룹 명칭을 금호그룹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변경하였고, 한국복합물류와 호남복합물류를 계열사로 편입해 물류사업에도 진출을 하였다. 또한, 2005년에는 금호타이어를 런던과 한국증권시장에 동시 상장하였다. 그러나 2006년과 2008년에 각각 당시 워크아웃 상태에 있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그룹이 해체 위기까지 가는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개별 업종에서 국내를 대표하던 두 기업을 금호아시아나그룹 전체의 시가총액보다 많은 금액으로 인수한 것이 그룹 부실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즉 두 기업을 인수한 후 국내적으로 경기 불황에 따른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고, 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겹쳐 자금 유동성 문제에 당면하면서 설립 후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었다.

2010년 1월 그룹의 모태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기업개선절차)에 들어갔고,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의 자율협약체제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박삼구 회장의 사재 출연으로 채권단과의 합의하에 금호타이어 경영권과 금호산업의 우선매수청구권을 인정받아 기업이 회생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2015년 7월에는 법원 판결을 통해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 계열사들이 법적으로 계열분리되어 독립경영의 길로 가게 됐으며, 같은 해 8월 채권단의 자율협약체제에 편입되었던 아시아나항공이 이러한 자율계약을 벗어나게 되었다. 2015년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고속·속리산고속·금호고속관광·청도솔라 등 4개사의 지분을 인수하여 계열사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2016년 8월에는 금호터미널이 금호기업을 흡수·합병하면서 금호기업은 해산되었으며, 금호터미널은 사명을 금호홀딩스㈜로 변경하였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표회사인 아시아나항공은 항공기의 기령이 낮은 편이어서 고객들의 선호도가 높으며, 2009년 ‘에어 트랜스포트 월드’를 시작으로 2010년 스카이트랙스, 2011년 글로벌 트래블러, 2012년 프리미어 트래블러, 비즈니스 트러블러로부터 5회 연속 ‘올해의 항공사 상’을 수상하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항공사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금호건설은 현재 베트남을 거점으로 동남아시아와 중동지역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면서 도시개발사업과 공항사업 등 각종 인프라 사업을 추진하는 등 신흥시장 진입을 통한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1977년 설립된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영재는 기르고 문화는 가꾸고’라는 재단설립 취지에 맞게 명품 고악기 무료 대여, 항공기 프리티켓 지원, 음악 영재 연주기회 확대 및 후원, 금호미술관을 통한 다양한 기획전시 및 신진 유망작가 발굴 등 한국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폭넓은 지원 활동을 펼쳐 국내 메세나 활동의 대표 회사 중 한 곳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금호아시아나는 2016년 창립 70주년을 맞이하였다. 아시아나항공은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444.5% 늘어난 2,570억 원을 기록하였는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미얀마 양곤, 인도네시아 발리 노선 운항을 전격 중단하는가 하면 국내외 45개 지점을 순차적으로 줄이는 등 다각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한 덕분이다. 또한, 에어부산에 이어 아시아나항공의 두 번째 저비용항공사(LCC)인 에어서울이 공식 운항을 시작하였다. 에어서울은 2016년 10월 일본 다카마쓰·시즈오카·요나고·나가사키, 마카오, 코타키나발루, 시엠레아프 등 국제선 10개 노선에 성공적으로 취항하였다. 금호산업의 실적도 호전되었는데, 2016년에는 신규 수주액 1조 6,034억 원을 달성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2015년 17위였던 시공능력평가 순위도 15위로 두 단계 성장하였다.

현황

2016년 9월 말 기준으로 금호홀딩스,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금호고속㈜, 금호리조트㈜, 아시아나개발㈜ 등 24개사의 계열회사를 두고 있는 금호아시아나는 현재 건설, 타이어,항공, 육상운송, 레저, IT 사업부문 등 다양한 사업군을 거느리고 있다. 금호고속은 국내 고속버스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아시아나항공은 ‘올해의 항공사 상’을 연이어 수상하였다. 또한 금호타이어는 국내는 물론 중국·베트남·미국에 생산기지를 건설하는 등 글로벌 경영체제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참고문헌

『2017년 매경한국기업연감』(매경출판사, 2017)
금호아시아나그룹(www.kumhoasiana.com)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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