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명칭은 기니공화국(Republic of Guinea)이며, 대서양에 면하여 있는 해안국가로 해안선 길이는 320㎞이다.
면적은 24만 5857㎢, 인구는 1178만 162명(2015년 현재), 수도는 코나크리(Conakry)이다. 종족은 말링케족(Mailinkes) 34%, 풀라니족(Fulani) 29%, 수수족(Soussou) 17%, 그리고 뻘족(Peuls) 등 15개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는 프랑스어가 공용어이고, 이 밖에 말링케어·수수어 등이 사용된다. 전 국민의 75%가 이슬람교도이며, 토착종교가 24%, 기독교도가 1% 정도이다.
열대성 대륙기후의 영향으로, 주민의 80%가 농목업에 종사하며, 쌀·커피·바나나 등이 주산물이다. 지하자원의 매장량은 아프리카에서 나이지리아 다음으로 많은데, 철·다이아몬드·금의 매장량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보크사이트는 추정매장량이 1,200억 톤으로 세계매장량의 3분의 2에 달한다. 2014년도 국민총생산은 66억 2000만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540달러이다.
기니의 정체는 임기 7년의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제로, 2001년 11월에는 국민투표를 통한 개헌을 실시하여 대통령 연임 제한을 철폐시켰다. 의회는 1984년 4월 3일 군사 쿠데타로 인해 해산되고, 1958년 독립 이후 유일하게 존재했던 기닌민주당(PDG) 역시 동 쿠데타로 해산되기도 했으나 2007년 현재 임기 5년의 단원제 의회(114석)가 구성되어 있다. 주요 정당은 통일진보당(PUP), 기니인민당(RGP), 신공화국연합(UNR) 등이다.
기니는 1866년 프랑스령이 되었다가 1904년에는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일부가 되었다. 그 뒤 1958년 8월 다른 프랑스령 아프리카 식민국가들과는 달리 프랑스공동체를 탈퇴하였으며, 10월 2일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때 세쿠 투레(Sekou Toure) 대통령은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공화국을 선포하는 한편, 기니민주당(PDG)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주의정책을 채택하였다.
1968년 1월 세쿠 투레가 대통령에 재선되면서 기니민주당의 일당독재가 강화되었다. 투레는 1974년과 1982년 총선거에서 승리하여 장기집권하였으나 1984년 3월 병사하였다. 같은 해 4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란사나 꽁떼(Lansana Conte) 대령이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꽁떼 대통령은 기니민주당과 국민의회를 해산하고, 25명으로 구성된 국가재건군사위원회(CMRN)를 구성하여 국정을 이끌었다. 이후 1990년 12월 23일 신헌법을 국민투표로 통과시키고, 동 헌법에 따라 1993년 12월 대선 및 1995년 6월 총선을 실시, 민정 이양을 완료하였다. 2008년 12월 꽁떼 대통령이 사망하고, 군사쿠데타와 과도정부 시기 등 혼란기를 겪었으나, 2010년 10월 실시된 민주선거 이후 알파 콩데(Alpha Conde) 대통령이 직책을 수행하고 있다.
기니 정부는 종전의 강경 사회주의노선을 지양하고 온건한 비동맹외교를 기조로 하는 중도의 실리외교를 전개하고 있다. 1958년 유엔에, 1961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여 모든 국가와의 협력, 특히 서방과의 협력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76년 이래 이 나라와의 관계개선을 위하여 관련 공관을 통해 접촉을 전개하였으며, 이에 그 동안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신중한 태도를 보였던 기니와 1978년 1월 6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1978년 10월에는 기니경제사절단이 방한하기도 했으나 1980년 1월 10일 양국 관계가 악화되어 일시 단교까지 가는 상태에 이르기도 하였다.
1984년 4월 군부 쿠데타 발생 후, 기니 신정부는 우리나라와의 관계개선에 호의적인 태도를 표명하여 현재는 주 세네갈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1984년 10월에 경제통상기술 협정을 비롯하여 문화체육 협정, 의료 협정, 어업 협정 등을 체결한 바 있으며, 우리나라 민간기업, 특히 건설업체 등의 진출 등을 통하여 양국간 경제협력이 증대되고, 그에 따라 관계도 더욱 긴밀해지고 있다. 2015년 현재 한국의 대 기니 수출액은 3311만 달러로 석유화학제품·냉동어류·차량용품 등이 주종이고, 수입액은 2974만 달러로 광물연료·석유·어류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북한은 1958년 10월 이 나라의 독립과 동시에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 1960년 7월 상주공관을 개설하였다. 대통령 세쿠 투레는 북한을 세 차례 방문하였고, 북한은 건설지원 등 상당한 경제협력을 제공하여, 양국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