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명칭은 기니비사우공화국(Republic of Guinea-Bissau)으로, 대서양 연안에 위치하며, 해안선 길이는 350㎞이다.
면적은 3만 6125㎢, 인구는 172만 6170명(2015년 현재)이며, 수도는 비사우(Bissau)이다. 종족은 발란떼족(Balante) 33%, 풀라니족(Fulani) 12%, ·만자코족(Manjacos) 17%, 만딩고족(Mandingo) 12%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부분이 토속신앙을 믿고(65%), 이슬람교도가 30%, 기독교도가 5%이다.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이며, 토착어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열대성 적도기후로 농업과 수산업이 주산업이다. 2014년도 국민총생산은 10억 2000만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568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제이며, 임기 4년의 단원제(100석)가 구성되어 있다. 주요 정당은 아프리카독립당(PAIGC), 사회개혁당(PRS), 변화를 위한 연합(UM) 등이 있다
1974년 9월 10일 포르투갈 식민지통치로부터 독립한 뒤 국가평의회 의장 카브랄(Cabral, Luis)이 국가원수로 통치해 오다가, 1980년 11월 쿠데타가 발생하여 기니비사우 출신의 비에이라(Vieira,Joao Bernardo)가 집권하였다. 쿠데타 이후 이 나라를 통치해 온 혁명위원회는 민정이양 방침에 따라 1984년 5월 해체되고, 최고 통치기관인 국가평의회가 새로 구성되었으며, 의장에 비에이라가 취임하여 신헌법을 채택하고 국민의회를 구성하였다. 1984년에 제정된 헌법은 1991년에 1차 개정하였다. 이후 2009년 3월 비에이라 대통령이 피살되고, 페레이라(Raimundo Pereira) 아프리카독립당 총재가 대통령 권한대행 직책을 맡았다.
대외적으로 좌경중립의 비동맹노선을 표방하여 사회주의국가, 특히 소련과의 친선유대강화에 힘써 오다가, 자국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서방진영을 포함한 비사회주의국가와도 우호관계를 증진시키고 있다. 1974년 유엔에, 1975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우리나라는 1974년 기니비사우를 승인한 이래 주로 수산 분야에서 협력을 증진해 왔다. 이와 병행하여 수교 교섭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으나, 기니비사우측은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우리나라와의 외교관계 수립을 주저하여 오다가, 1983년 12월 22일 수교 합의에 이르렀다.
수교 과정에서 우리나라 민간 수산업체의 빈번한 방문과, 기니비사우 수자원장관 등 양국 정부 고위관리들의 교환 방문이 이루어졌으며, 대정부 협력차원에서 경운기·선박엔진·어망·어로기구 등 기자재를 제공하였다. 1985년 6월에는 국가평의회의장 비에이라가 공식 방한하여 14개 항의 공동성명을 발표한 이후로 친선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되었고, 1988년 12월에 , 1989년 4월 경제기술협력 협정 등을 체결한 바 있다. 2015년 현재 한국의 대 기니비사우 수출액은 40만 달러로 운송장비·사진재료·전자제품이 주종이고, 수입액은 36만 달러로 어류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기니비사우 연안에서는 동원수산(주)이 조업 중이며, 16명의 한국민이 체류하고 있다.
한편, 북한과는 1974년 3월 16일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한 후 1975년 4월 상주공관을 개설하고 카브랄 대통령, 비에이라 대통령이 1979년과 1982년 각각 북한을 방문하는 등 친북한 성향이 농후해져 국제연합·비동맹 등 국제회의에서 북한 쪽을 지지하여 왔다. 그러나 북한은 1991년 3월 공관을 철수하였고, 현재 주 기니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