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아공화국(Republic of South Africa)이라 불리며, 아프리카 남단의 해안선 길이가 2881㎞에 달한다.
면적은 121만 9090㎢, 인구는 5367만 5563명(2015년 현재), 행정구역은 9개 주로 이루어져 있다. 행정수도는 프리토리아(Pretoria)이며, 입법수도는 케이프타운(Cape Town), 사법수도는 블룸폰테인(Bloemfontein)이다.
종족은 백인 13.6%, 흑인 75.2%, 아시아계 및 혼혈인 8.6%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는 영어와 아프리칸스(Africans:네덜란드어 계통)가 공용어이며, 줄루어(Zulu) 등 9개 토착어도 쓰인다. 종교는 대부분이 기독교이며, 힌두교·유태교·이슬람교 및 토착신앙이 공존한다.
개방경제체제를 표방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광물자원 보유국의 하나로 금·망간·크롬·형석의 매장량은 세계 제1위이며, 우라늄·다이아몬드·철광석·동·석탄 등 중요자원을 포함한 42개 종류의 광물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현대의 기간산업 및 군수산업에 불가결한 망간·크롬·바나듐 등의 자원이 생산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공업이 가장 발달되어 있으나 국제적 고립으로 인하여 내수용 산업에 많이 치중되어 있다.
2014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3501억 달러이며, 1인당 국민소득은 6,483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제이며,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인 대통령은 하원에서 선출된다. 의회는 양원제로 임기 5년인 상원(90석)과 하원(400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정당으로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신국민당(NNP), 보수당(CP), 공산당(SACP), 인카타자유당(IFP) 등이 있다.
165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얀 판리벡이 동양무역의 보급기지 건설을 위하여 케이프타운에 상륙한 뒤부터 네덜란드인의 이주가 계속되었고, 이들은 스스로를 네덜란드어로 농부를 뜻하는 ‘보어(Boer)’라고 불렀다. 그 뒤 원주민과 보어인과의 싸움이 계속되었고, 18세기 후반부터는 영국인의 침투가 계속되어 1814년에는 케이프타운이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에 따라 보어인들은 북쪽으로 이주하여 1852년에 오렌지자치국, 1854년에 트란스바알공화국을 건설하였으나, 1899년 보어전쟁에서 보어인이 영국에 패하게 되자 1902년 두 공화국이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1910년 5월 31일 남아프리카연맹을 형성하여 영국 연방의 일원으로 독립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48년 보어계의 국민당정권이 내각을 구성하였고, 1961년 영국연방을 탈퇴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선언하였다. 1961년 이후 제정한 70여 인종차별 법규로 인종차별 정책을 강화하는 한편, 제1차세계대전 때 점령한 구 독일령 서남아프리카(1968년 나미비아로 개칭)를 계속 통치함으로써 유엔 등 국제사회의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
흑인들은 아프리카국민회의당(ANC) 등을 중심으로 인종차별정책 저항운동을 계속해 왔으며, 1976년 소웨토(Soweto) 흑인 저항운동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인종차별문제의 완화를 위하여 1983년 백인에게만 참정권을 허용하던 〈헌법〉을 개정하여 1984년부터는 혼혈계 및 인도계에 대하여 제한적이나마 참정권을 부여하였으나, 백인 정부와 흑인들 간의 유혈충돌은 1985년에 오히려 격화되었다.
1989년 9월 총선에서 국민당이 승리하고 드클레르크(DeKlerk) 대통령이 취임하자 흑인과의 권력 공유를 통한 민주화 정책이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1990년 2월 인종차별 정책이 철폐되고, 만델라(Mandela) ANC 부의장이 석방되었으며, 1991년 6월에는 거주지역법·토지법·주민등록법 등 인종차별 3대 악법이 폐지되었다. 1992년에서 1993년 사이 모든 정파가 참석한 다당정치 협상이 우여곡절 끝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1993년 12월 잠정 헌법이 채택됨으로써 1994년 총선을 위한 기틀이 구축되었다.
1994년 4월 최초의 흑백 다인종 자유총선이 실시되고, 흑인 민족주의 단체인 ANC가 63%의 지지로 승리, 320여 년간의 인종차별에 의한 백인 정권이 종말을 고하였으며, 1994년 5월 10일 만델라 ANC 의장을 대통령으로 하는 흑인 다수정부(사실상 흑백 연합정부)가 수립되었다. 1996년 5월 의회에서 인종차별 철폐를 비롯한 인권보장 측면이 강조된 신헌법이 채택되어 1997년 2월부터 일부 발효되기 시작했고, 1999년 6월 완전 발효되었다. 1999년 6월 총선거에서 ANC가 승리하고, 8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음베키(Mbeki)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2004년 6월 재선되었으나 의회의 탄핵으로 사임하자 2008년 9월 모틀란테(Mothlante) 대통령이 뒤를 이어 취임하였다.
아프리카에서는 드물게 친서방 자유주의 국가이며, 1945년 유엔에, 1994년에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인종차별정책으로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아 1974년 유엔에서 축출되었다가 1994년 신정권 탄생 후 재가입하였고, 아프리카통일기구(OAU), 남아프리카개발협력회의(SADCC) 등에도 재가입하여 정상적인 국제관계를 회복하였다.
특히 2010년 월드컵축구대회를 유치하여 대외적으로 인종차별의 흔적을 없애고, 안으로는 도시 미화작업 등 국가 이미지 개선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6·25전쟁 때 유엔군의 일원으로 1개 비행중대를 한국에 파병하였으며, 한국은 이를 기리기 위하여 경기도 평택시에 남아프리카공화국참전비를 세웠다.
그러나 인종차별 정책 및 나미비아 점령으로 인하여 국제사회의 규탄과 제재의 대상이 됨에 따라 한국도 유엔 결의를 존중하여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의 교류를 제한하고 아울러 이러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천명해 왔다.
그러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1992년 들어 민주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국제사회의 제재가 완화되면서 한국은 1992년 12월 1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1993년 3월 상주공관을 설치하였다.
이후 1995년 7월에는 만델라 대통령이 방한하는 등 원만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95년 7월에는 이중과세 방지 협정, 항공 협정, 투자보장 협정을 체결했으며, 1996년 4월에는 사증면제 협정을 체결하였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108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였다. 2007년 현재 교민 1131명과 체류자 2349명이 있으며, KOTAR를 비롯하여 현대·삼성·대우·쌍용·금호·LG·선경 등 업체들이 진출해 있다. 2015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 남아프리카공화국 수출액은 약 12억 6200만 달러로서 자동차·휴대폰·합성수지·건설중장비 등이며, 수입액은 14억 1800만 달러로 백금·합금철·철광·알류미늄 등이 주종목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반공국가로서 북한뿐만 아니라 소련 등 모든 공산주의국가와 비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탈냉전 이후 북한과 1998년 8월 10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2007년도 북한의 대 남아프리카공화국 수출액은 약 44만 7000 달러로서 섬유·전기기기 등이며, 수입액은 634만 달러로 철강이 주종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