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명칭은 라이베리아공화국(Republic of Liberia)이다. 대서양에 면하여 있는 해안국가로, 해안선 길이가 579㎞에 달한다. 면적은 11만 1369㎢, 인구는 419만 5666명(2015년 현재)으로, 수도는 몬로비아(Monrovia)이다. 인구의 90%는 골라족·크펠레족 등의 16개 토착흑인 보족이며, 10%는 미국 등지로부터 이주한 흑인이다.
언어는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나 골라·크펠레·바사·크루·크란 등 부족에 따라 30여 개의 방언이 있다. 종교는 토착종교가 75%를 차지하고, 이슬람교 15%, 기독교 10% 정도이다.
기후는 고온다습하고, 철광석·다이아몬드가 풍부하여 총수출의 76%를 차지하며, 기타 천연고무·커피·코코아·어업자원 등 풍부한 자원을 확보하고 있으나 개발능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2014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20억 달러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458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제로서, 의회는 양원제로, 임기 4년의 상원(30석)과 하원(60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정당은 국민애국당(NPP), 통일당(UP), 라이베리아국민민주당(NDPL), 라이베리아연합당(ALCOP) 등이다.
1821년 주로 미국의 남부지방에서 해방된 노예들이 미국식민협회의 도움으로 이주하여 이 나라를 건설했다. 1847년 7월 26일 미국의 후원 아래 정식으로 독립하여 아프리카 최초의 공화국이 되었으며, 미국식 제도를 골격으로 한 헌법 및 행정체제를 채택하였다. 1980년 4월 도우(Doe, Samuel. K.)를 중심으로 한 부사관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에 따라 그 동안 특권계급을 형성하여 원주민을 지배하였던 미국계 해방노예 및 그 후예들의 지위가 어느 정도 실추되었다. 도우 정권은 친미노선을 천명하고, 미국 및 서구와의 관계를 친밀히 하였다.
1981년 5월 리비아와 단교하였으며, 1983년 11월에는 소련 대사에게 국외퇴거를 명령하였고, 1985년 7월 소련과 단교하였다. 크란족 출신의 도우 대통령은 집권 이후 미 흑인노예 후손과 지오족 등을 대량으로 학살하였다. 1984년 7월 신헌법을 제정하고 1986년 개정하였다.
이후 1989년 12월 조직된 반정부 단체인 라이베리아 민족애국전선(NPFL)이 도우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내전에 돌입하게 되었다. 미국계 해방 노예의 후손인 테일러는 크란족이 아닌 다른 종족들을 규합, 반란을 일으켜 28개 부족간의 복수전은 계속되었다. 1990년 9월 반군에 의해 도우 대통령이 살해된 후 주변국 지지 속에 반정부 활동가 아모스 소야가 같은 해 11월에 대통령 취임을 선서하였다.
1992년 10월 소야를 지지하는 라이베리아 민주통일해방전선(ULIMO)과 NPEL 간의 전투가 격화되자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ECOWAS) 회원국이 파견한 합동군이 정부군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확대일로를 걷던 내전은 1993년 7월 제네바에서 정부군과 ULIMO, NPFL 등 3개 내전 당사자들이 모여 포괄적인 평화협정에 합의하였다.
1994년 3월 잠정 국가평의회와 잠정 입법회의를 설치하고, 5월에 잠정 국민정부 발족과 각료 배분, 9월에 대통령 및 의회 선거 실시를 합의하였다. 같은 해 12월 ECOWAS 중재하에 군벌과 민간 정치인들은 아크라 회담에서 1995년 11월에 선거를 실시하고 1996년 1월 새정부 발족을 골자로 한 평화협정에 서명하였다.
1995년 내전 당사자 6인 대표는 9월 1일 6인 과도통치기구인 국가평의회를 구성하였으며 5일에는 각료들을 임명하였다. 그러나 1996년 4월 국가평의회가 살인 혐의로 전군병 루스벨트 존슨을 체포하려 하자 그를 추종하는 크란파 무장 세력이 반격하여, 한동안 내전이 격화되었다.
내전 당사자들은 같은 해 8월 적대행위를 즉각 중지하고 병력을 6인 협정 이전의 위치로 철수하는 데 합의하였다. 1997년 7월 19일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7년간의 내전을 주도해 온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가 75%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2006년에는 존슨 설리프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설리프는 기초교육 보급, 평화 정착 등의 성과를 낸 공로로 2011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며 같은 해 재선에 성공했다. 현재는 2017년 대선에서 당선된 조지 웨아(George Weah)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다. 라이베리아 정부는 비동맹외교를 기조로 하는 우경중립의 외교를 전개하고 있으며, 1945년 유엔에, 1964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여 모든 국가와의 협력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64년 3월 18일 라이베리아와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하고, 1973년 7월 상주공관을 개설하였다. 라이베리아도 1983년 11월 아프리카국가 중에서는 가봉에 이어 두 번째로 주한 상주공관을 개설하였다. 특히 1982년 5월 도우 국가원수의 방한으로 친한정책이 견고화되어, 유엔·비동맹 등 각종 국제회의에서 우리나라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한편, 1970년 7월에는 의료 협정을, 1977년 11월에는 항공 협정을 체결했으며, 1979년 1월 무역 협정, 1982년 5월에는 사증면제 협정과 경제기술협력 협정을 체결하였다.
우리나라는 1984년 6월 예술단을 파견하였고, 1984년 9월 국제민속예술제에 주재국예술단(10인) 초청 및 태권도사범 파견 등 문화교류도 많이 하였다.
1984년 3월 아프리카에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건설업체가 국제규모의 라이베리아 도로건설공사(약 1600만 달러 규모)를 수주한 바 있다. 2015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 라이베리아 수출액은 13억 2000달러로 주종목은 선박·어류·합성수지 등이고, 수입액은 1492만 달러로 주종목은 중고선박·알루미늄·동제품 등이다.
경제기술협력면에서 우리나라는 주로 농업분야 종사자(1983년 10인, 1984년 8인)에 대해 기술공여를 해 왔으며, 의복·차량·의약품 등 한국산 기자재의 무상공여와 의료단 파견 등으로 실질적인 경제협력관계를 증진시켜 왔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15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였으며, 2007년 현재 43명의 교민이 있다.
한편, 라이베리아는 1973년 12월 20일 북한과 수교 이후 북한과의 관계를 형식적으로 유지하고 있으며, 북한은 1968년 1월 상주공관을 설치하고 주 기니 대사가 겸임하고 있지만, 여타 교역 및 원조현황은 미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