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보법은 음악의 높이, 길이, 연주법 등을 기록하여 창작과 보존, 연주를 돕는 시각적 표기 체계이다. 음악의 요소를 기호로 기록하여 리듬·음정·템포 등 음악의 재현·창작을 돕는다. 서양에서는 12세기부터 오선보가 발달했으며, 한국에서는 정간보·육보·율자보·합자보 등 고유한 기보법이 발전했다. 한국의 기보법은 주로 음의 높이와 길이, 연주법을 중심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이러한 기보법은 오늘날 국악 연구와 교육에서 필수적이며, 전통 음악의 원형을 보존, 전승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보법(記譜法)은 음악을 기록하기 위해 고안된 방식으로, 기호와 표식을 활용해 리듬, 음정, 템포, 강약, 감정, 연주 스타일 등 음악의 요소를 표현한다. 이는 완벽한 기록 수단은 아니지만, 창작, 보존, 연주의 편의를 위해 개발되었으며, 음악을 문서로 남기고 전달하여 보다 정확한 재현과 새로운 창작을 돕는 도구로 기능한다.
기보법은 시대, 지역,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서양에서는 12세기부터 오선보[Staff Notation]가 발전하여 15~16세기에 현재의 형태로 정착되었다. 이는 5개의 선을 통해 음높이와 음길이를 표시하는 방식으로 현대 서양 음악에서 널리 사용된다. 반면, 서양 이외의 지역에서는 독창적인 기보법이 발전하였으며, 일부 지역은 구전을 통해 음악을 전승하거나 고유한 방식으로 음악을 기록하여 보존하였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기보법이 발전했으며, 주로 궁중과 상류층에서 사용되었다. 한국 전통 음악의 기보법은 기악곡을 중심으로 음높이, 음길이, 연주법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발전하였으며, 대표적으로 육보(肉譜) · 율자보(律字譜) · 공척보(工尺譜) · 약자보(略字譜) · 정간보(井間譜) · 오음약보(五音略譜) · 합자보(合字譜) · 연음표(連音標) 등이 있다. 이러한 기보법은 한국 전통 음악의 보존과 전승에 기여하였으며, 율자보와 정간보는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다.
육보는 한국 전통 음악에서 특정 악기의 소리를 의성어[구음]로 나타내어 음의 높낮이와 연주 스타일을 기록한 기보법이다. 조선시대 세조(世祖) 이전부터 거문고 · 가야금 · 대금 · 피리 · 비파 등의 악기에 사용되었으며, 구체적인 음을 표현하기보다는 각 악기의 소리를 흉내 내는 방식으로 음악을 기록했다. 이 방식은 개별 악기를 중심으로 작성되어 합주 음악을 기록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으며, 동일한 구음이 두 개 이상의 음을 나타내어 정확한 음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거문고 육보의 구음〉
덩: 대현을 장지로 누르고 내는 소리 당: 유현을 무명지로 누르고 내는 소리
둥: 대현을 식지로 누르고 내는 소리 동: 유현을 식지로 누르고 내는 소리
등: 대현을 모지로 누르고 내는 소리 징: 유현을 모지로 누르고 내는 소리
쌀갱: 유현을 무명지, 식지, 모지 등으로 누른 후, 문현을 거쳐 유현을 내는 소리
싸랭: 쌀갱 주법에서 문현의 시가를 짧게 내는 소리
슬기덩/둥/등: 대현을 장지/식지/모지로 누른 후, 문현과 유현을 거쳐 대현을 내는 소리
뜰: 유현, 대현, 괘상청을 술대를 안으로 뜨며 연주하는 기법
러, 루, 르, 라, 로, 리: 덩, 둥, 등, 당, 동, 징의 자출성[술대를 사용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줄을 튕기어 내는 소리]을 각각 구음으로 표현하는 소리
『세조실록악보』의 서문에 따르면, 육보는 전대(前代)에 사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현재까지 세조 이전의 육보로 기보된 악보는 발견되지 않았다. 육보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악보는 1572년(선조 5)에 안상(安瑺)이 편찬한 『금합자보(琴合字譜)』이다. 『금합자보』는 총보 형식을 따르며, 거문고 및 대금의 기보에 육보가 사용되었다. 육보는 조선 후기에 자주 사용되었는데, 1841년(헌종 7)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죽금보(三竹琴譜)』와 윤용구(尹用求: 1853∼1939)가 1886년(고종 23)에 편찬한 『현금오음통론(玄琴五音統論)』은 모두 육보 중심의 악보이다.
한국 전통 음악에서 육보가 주요 기보법으로 사용된 이유는 스승과 제자가 구전을 통해 악기 연주법을 전수하는 데 매우 적합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현전 많은 고악보가 육보로 기록되어 있어 육보는 한국 전통 음악 연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율자보는 12율명(律名)을 사용하여 음의 높이를 기록하는 기보법으로, 고려 예종(睿宗: 재위 1105∼1122) 시기에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1114년(예종 9), 사신 안직성(安稷成)이 송나라를 방문한 뒤 귀국하며 철방향(鐵方響) · 석방향(石方響) · 비파(琵琶) · 오현금(五絃琴) · 쌍현금(雙絃琴) · 공후(箜篌) · 적(笛) · 포생(匏笙) · 훈(壎) · 장구(杖鼓) · 주1 등의 악기와 함께 악보[曲譜] 10책과 지결도(指訣圖) 10책을 가져왔다. 이 악보들은 주로 궁중 음악을 기록한 것으로, 율자보로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주2
12율명은 음의 높이를 나타내는 이름으로, 황종(黃鍾), 대려(大呂), 태주(太簇), 협종(夾鍾), 고선(姑洗), 중려(仲呂), 유빈(蕤賓), 임종(林鍾), 이칙(夷則), 남려(南呂), 무역(無射), 응종(應鍾)으로 구성된다. 율자보는 12율명 중 첫 글자를 사용하여 음을 표기한다. 예를 들어, 황종은 ‘황(黃)’, 대려는 ‘대(大)’로 표기한다.
율자보는 주로 아악(雅樂)의 악보로 사용되었으며, 『세종실록악보』의 조회악과 제례악에서도 활용되었다. 오늘날에도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과 같은 의식 음악에서 사용되며, 4개의 음을 하나의 단위로 묶어 사용한다. 예를 들어, 처음 세 글자는 동일한 길이로 노래되고, 네 번째 글자는 더 길게 지속된다. 이 방식 덕분에 별도의 음 길이 표시는 필요하지 않다.
율자보는 절대적인 음의 높이를 정확히 표시하며, 한 옥타브 내의 12음을 표현할 수 있다. 옥타브를 넘는 소리는 문자의 변(邊)을 추가하여 표시한다. 12율명 한 옥타브 내의 기본 음역에 있는 12율을 중성(中聲)이라 하고, 이보다 한 옥타브 높은 음역을 청성(淸聲)이라 하여 해당하는 율명에 ‘청’(淸)이라는 글자를 부기하거나 또는 율명의 첫 글자 왼편에 ‘氵’[삼수 변]을 붙이고, 두 옥타브 높으면 중청성(重淸聲)이라 하며 ‘氵氵’[겹삼수 변]을 붙인다.
또한 기본 음역에 있는 12율보다 한 옥타브 낮은 음역을 배성(倍聲) 혹은 탁성(濁聲)이라 하며, 율명의 첫 글자 왼편에 ‘亻’[사람인 변]을 붙이고, 두 옥타브 낮을 때는 배탁성(倍濁聲)이라 하여 ‘彳’[두인 변]을 붙인다. 조선 전기 『세종실록악보』에서는 배성을 붉은 글씨로 써서 검은 글씨와 구분하여 표시하였다.
율자보는 음의 높이를 정확하게 표시할 수 있지만, 음의 길이나 리듬을 표시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다른 기보법과 병용되기도 하는데, 『세종실록악보』에서는 정간보와 함께 사용되었다. 또한 같은 율명이라도 악기나 음악의 갈래에 따라 실제 음높이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황종은 당피리, 편종, 편경 등에서는 C 음에 해당하지만, 향피리, 거문고, 가야금, 대금 등에서는 E♭ 음에 해당한다.
공척보는 음높이를 표시하기 위해 한자를 간략화하여 사용한 기보법으로, 중국에서 유래된 방식이다. 공척보는 12율과 청성의 음 4개를 포함해 총 16개의 음을 나타낼 수 있으며, 10개의 기본 한자[합(合), 사(四), 일(一), 상(上), 구(句), 척(尺), 공(工), 범(凡), 육(六), 오(五)]를 사용하여 음을 표현한다. 다만, 선법에 따라 각 문자가 지시하는 음이 달라지므로 공척보를 정확히 해석하려면 선법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공척보는 12율과 4청성을 10개의 문자로 줄였기 때문에 ‘십자보(十字譜)’라고도 불리며, 이를 더욱 간단하게 만든 형태가 바로 ‘약자보’이다. 대전연정국악문화회관[구 대전연정국악원]에 소장된 「보허사(步虛詞)」의 거문고와 가야금 악보는 약자보로 기록되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 당시 이왕직 아악부(李王職雅樂部) 시절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율자보와 마찬가지로 공척보는 음의 높이를 표시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음 길이를 나타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또한, 하나의 문자가 두세 개의 음을 나타낼 수 있어 정확한 음 해석이 어렵고, 선법을 알지 못하면 음정을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공척보는 율자보와 함께 1114년에 도입된 것으로 주3 이는 공척보가 주로 당나라에서 유입된 당악(唐樂)을 기록하는 데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공척보로 기록된 대표적인 악보로는 『세종실록악보』의 대성악보(大成樂譜)와 『세조실록악보』의 신제아악보(新制雅樂譜)가 있으며, 이후 『악학궤범(樂學軌範)』에서는 당악기의 운지법을 기록하기 위해 공척보와 함께 오음약보가 사용되었다.
정간보는 조선 세종대왕이 창제한 기보법으로, 음의 높이와 길이를 동시에 기록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식이다. 기존 기보법인 육보는 음의 소리를 모방하여 기록할 수 있었지만, 음의 길이를 명확히 표시하지 못했다. 율자보와 공척보 역시 음의 길이를 표현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기존의 중국에서 유입된 아악(雅樂)과 당악(唐樂)을 기록하는 데는 적합했으나, 한국 고유의 향악(鄕樂)을 기록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한국 음악은 중국 음악보다 음 길이의 변화가 많았기 때문에, 음 높이만을 기록하는 기존 기보법으로는 표현이 어려웠다. 이러한 이유로 세종대왕은 기존 기보법의 한계를 극복하고, 한국 음악에 적합한 기보법을 창안하게 되었다.
정간보의 창제 시기는 명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1447년(세종 29) 6월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에 제작된 「정대업(定大業)」, 「보태평(保太平)」, 「여민락(與民樂)」, 「치화평(致和平)」, 「취풍형(醉豐亨)」 등의 악보들이 모두 정간보로 기록되었다. 이는 정간보가 향악과 고취악 기반의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 창제되었음을 보여준다.
정간보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사각형 칸[정간]을 사용하여 악곡을 기록한다. 각 칸은 일정한 시간적 단위를 나타내며, 한 칸이 보통 한 박에 해당한다.
정간보의 초기 형태는 『세종실록악보』에서 확인되며, 한 줄에 32정간으로 구성되었다. 각 정간에는 12율명의 첫 글자가 추가되어 음의 높이를 나타내고, 음의 길이는 정간 수로 표시되었다. 예를 들어, 한 칸은 짧은 음, 여러 칸이 이어지면 긴 음을 의미한다. 이후 『세조실록악보』에서는 한 줄을 16개의 정간으로 줄이고, 이를 6대강으로 나누어 리듬을 보다 명확히 표현하였다. 6대강은 2~3개의 정간으로 구성되며, 3·2·3·3·2·3의 패턴으로 음악의 리듬 구조를 체계적으로 기록한다.
각 정간에는 오음약보가 추가되어 궁(宮)을 중심으로 고음은 상1(上一), 상2(上二) 등의 기호로, 저음은 하1(下一), 하2(下二) 등의 기호로 음 높이를 표시한다. 때로는 정간 안에 합자보가 추가되어 악기의 연주법을 함께 기록하기도 했다. 한편 정간보의 각 행은 다양한 악기 파트나 성악 부분을 기록하도록 설계되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행은 현악기, 두 번째 행은 관악기, 세 번째 행은 타악기, 네 번째 행은 노랫말 등을 기록하였다.
정간보는 동아시아 최초로 음의 시간 값을 음 높이와 함께 명확히 표현한 기보법으로, 서양의 오선보에 비견될 만큼 발전된 기보법이다. 특히, 합주 음악의 다층적 구조를 체계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최초의 악보로,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현재 사용되는 정간보는 한 칸이 박자의 단위로 사용되며, 흔히 한 박에 해당한다. 한 칸에는 주로 율명의 첫 글자를 적어 음의 높이를 나타낸다. 정간보는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지만, 정간 속의 율명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먼저 읽고, 이후 위에서 아래로 순서를 따른다.
오늘날 정간보는 국악 연구와 전통 음악 복원에서 필수적인 자료로 사용되며, 국악 교육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전통 악기 연주법 연구에도 활용되어 국악의 전승과 보존에 기여하고 있다.
오음약보는 세조 재위 기간 동안 정간보를 수정하여 만든 기보법으로, 궁상하일이지보(宮上下一二之譜)라고도 불린다. 이 기보법은 황효성(黃孝誠) 등이 제작하였으며, 1464년(세조 10)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세조실록(世祖實錄)』에 따르면, 세조는 황효성에게 악보를 작성하게 하고, 연주를 들어본 후 하4(下四)를 한 절 더 추가하도록 하였다고 전해진다.
오음약보는 1행이 6대강과 16정간으로 이루어진 정간보에 기보되어 있어서, 음의 높이를 표시하고 음의 길이를 대강과 정간 수로 표시한다.
오음약보는 향악을 5음 음계로 기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기존 정간보가 12율명으로 절대 음을 표시하는 고정 음계 방식인 반면, 오음약보는 다섯 음으로 상대 음을 표시한다. 음은 궁을 기준으로 높거나 낮은 음을 구분하여, 궁보다 높은 음은 상1(上一), 상2(上二), 상3(上三), 상4(上四), 상5(上五)로, 낮은 음은 하1(下一), 하2(下二), 하3(下三), 하4(下四), 하5(四五)로 기록된다. 이로 인해 고음과 저음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오음약보는 5음 음계를 사용하여 다양한 음계를 표현할 수 있으며, 악보의 첫 부분에 궁의 음정과 선법을 표시하여 음과 음의 관계를 나타낸다. 오음약보에는 평조[솔 중심의 5음 음계]와 계면조[라 중심의 5음 음계]라는 두 가지 선법이 있다. 평조는 치[徵, 솔]를 중심으로 하고 계면조는 우[羽, 라]를 중심으로 기록된다.
오음약보는 주로 향악을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7음 음계를 사용하는 당악 등을 기보할 때는 오음약보와 함께 공척보나 율자보가 함께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세조실록악보』의 「풍안지악(豐安之樂)」에서는 오음약보와 공척보가 함께 사용되었고, 『대악후보(大樂後譜)』의 「보허자(步虛子)」에서는 오음약보와 율자보가 함께 사용되었다.
합자보는 거문고와 가야금 같은 현악기의 연주법을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기보법으로, 연주의 정확성과 학습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표보[tabluature] 형식이다. 이 기보법은 각 줄의 이름, 연주하는 왼손 손가락의 이름, 줄을 짚는 위치[괘의 순서], 오른손 술대의 사용법을 결합하여 악기의 연주 방법을 체계적으로 나타낸다.
〈거문고의 합자 기호〉
줄 이름 : 文-문현(文絃), 方-유현(遊絃), 大-대현(大絃), 上-괘상청, 下(又)-괘하청 또는 기괘청, 止-무현(武絃)
손가락 이름 : 엄지 또는 모지(母: ㄱ), 식지(食: ㅅ), 장지(長: ㄴ), 약지 또는 무명지(名: 夕), 소지(小: 小)
괘 순서 : … 四 五 六 …
술대 사용법 : 점( · )이나 세로 선(|)으로 표기
합자보는 조선 성종(成宗: 재위 14691494) 대 성현(成俔: 14391504), 박곤(朴𦓼), 김복근(金福根) 등에 의해 체계화되었으며, 『악학궤범』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후 연주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합자보도 더욱 세밀하고 직접적인 기호가 추가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합자보는 『금합자보』로, 주로 거문고를 위한 기보법이지만, 이 악보에는 합자보, 오음약보, 육보의 세 가지 기보법이 함께 사용되었다. 합자보는 보통 육보와 함께 사용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육보만이 주로 사용되었고, 합자보에서 줄 이름과 손가락 이름 등 일부 부호만 독립해서 드물게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1841년 편찬된 『삼죽금보(三竹琴譜)』는 합자보에서 줄 이름과 손가락 이름, 괘 순서를 나타내는 부호가 간간히 육보와 함께 사용되었다.
합자보는 각 악기의 연주법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여 연주의 정확성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연주 기술 발전과 악곡 전승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금합자보』의 서문에서는 “먼 시골에 살면서 현금[거문고]을 배우고 싶지만 스승을 찾을 수 없다면, 이 금보[거문고 악보]를 구해 스스로 배우면 된다. 마치 스승이 바로 옆에서 가르쳐 주는 것처럼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라고 언급되어, 당시 음악 교육과 보급에도 크게 기여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조선 시대 문인층 사이에서 수신(修身)을 위한 수단으로 거문고가 널리 유행함에 따라, 이를 통해 합자보로 기록된 악보가 널리 전파되었다. 합자보는 한국 전통 음악의 독특한 연주 기법을 기록하여, 현재 국악 연구 및 복원 작업에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연음표는 유럽의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사용된 네우마(Neuma)와 유사한 방식으로, 곡조를 가사 옆에 기호로 나타내어 노래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기보법이다. 연음표는 가창자들이 노래의 음의 상승과 하강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이를 통해 노래의 선율을 더욱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연음표는 특히 『가곡원류(歌曲源流)』, 『협률대성(協律大成)』, 『여창가요록(女唱歌謠錄)』 등 가집에서 발견된다. 가집은 조선시대 가곡을 주로 기록한 중요한 사료로, 가창자들이 노래의 선율을 쉽게 익히고 전달할 수 있도록 기호를 포함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연음표는 당시 노래 교육과 가창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하규일(河圭一: 1867~1937)이 이왕직 아악부에서 가곡을 가르칠 때 사용한 음가 표기는 연음표 기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되었다.
현재 국악을 오선보로 표기하는 방법은 서양 음악에서 사용하는 방법과 같고, 다만 국악의 특징적인 부분을 나타내기 위한 약속이 각 악기별로 조금씩 다르다. 최근에 새롭게 창작된 신국악[창작국악] 작품은 편의에 따라 오선보를 쓰며, 최근에 채보되는 산조나 민요도 오선보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의 기보법은 또 다른 기준에 따라 크게 음고 기보법, 시가(時價) 기보법, 주법 기보법, 선율 기보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① 음고 기보법은 음악에서 음의 높이를 표시하는 기보법으로, 이에 속하는 유형은 율자보, 궁상자보(宮商字譜), 공척보, 오음약보, 육보, 차용보(借用譜)가 있다. ② 시가 기보법은 음악에서 음의 길이를 나타내는 기보법으로, 정간보, 대강보(大綱譜), 간격보(間隔譜), 삼조표(三條標), 장단보(長短譜), 부호보(符號譜)가 포함된다. ③ 주법 기보법은 악기의 연주 방법이나 성악의 창법을 기록하는 기보법으로, 합자보, 숫자보(數字譜), 육보, 문자보(文字譜), 도형보(圖形譜), 연음표가 속한다. ④ 선율 기보법은 선율의 흐름을 표현하는 기보법으로, 선율선보(旋律線譜), 동음집(同音集)이 이에 해당한다.
이상 한국에서 기보법은 단순히 음악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서, 연주와 창작,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 전통 음악에서 기보법이 존재함으로써 음악이 보다 정확하게 보존되고 전승될 수 있었으며, 이는 오늘날 전통 음악의 연구와 교육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기보법이 없었다면 많은 음악이 구전으로만 전해져 원형이 변형되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기보법의 존재는 한국 음악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