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보법 ()

시용향악보 / 풍입송
시용향악보 / 풍입송
국악
개념
음의 고저와 장단을 표시해 음악을 기록하는 방법을 가리키는 국악용어.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음의 고저와 장단을 표시해 음악을 기록하는 방법을 가리키는 국악용어.
개설

우리 나라에서 사용된 기보법은 율자보(律字譜)·공척보(工尺譜)·육보(肉譜)·오음약보(五音略譜)·합자보(合字譜)·연음표(連音標)·정간보(井間譜) 등 일곱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에서 율자보와 정간보는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율자보

음의 고저를 12율명의 머리글자로 표시한 문자보(文字譜)로, 주로 <문묘제례악 文廟祭禮樂> 같은 아악을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다. 고대 희랍의 문자보와 같은 류(類)의 것이다.

율자보는 한 옥타브 안에 12율을 갖추고 있어 12조(調)로 자유로이 변조(變調)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시가(時價)가 표시되어 있지 않아 불편하다. 그러나 균등한 시가를 가진 아악을 기보하는 데에는 별로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세종실록≫의 <조회악 朝會樂>·<제사악 祭祀樂> 등의 아악보와 주희(朱熹)의 ≪의례경전통해시악 儀禮經傳通解詩樂≫, 임우(林宇)의 ≪대성악보 大成樂譜≫ 등이 중국의 7성인 궁·상·각·변치·치·우·변궁과 함께 율자보로 기보되었다.

율자보는 그 뒤 성종 때의 ≪악학궤범≫에도 사용되었고, 현재에도 <문묘제례악> 같은 제례음악에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율자보는 민간에서는 사용되지 않았고, 아악부(雅樂部) 내에서만 사용하였다. <문묘제례악> 중 황종궁(黃鐘宮)을 예로 율자보와 오선보를 비교하면 [그림 1] 과 같다.

이와 같이 4음 단위로 된 음악은 고시형(古詩形)인 사언(四言)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시경≫에 전하는 많은 시도 그것이 사언이기 때문에 모두 이러한 음악류에 속한다. 이 율자보는 단독으로 쓰이는 것 외에도 정간보와 함께 사용됨으로써 음고(音高)와 장단을 동시에 나타내어 ≪속악원보≫와 현행 아악보에 사용되고 있다.

공척보

주로 중국계 속악(俗樂)에 사용하던 악보로 일종의 문자보이지만, 이것은 다음과 같은 문자로 고저를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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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가 둘 이상의 음을 표기하기 때문에 율자보처럼 고저를 분명히 표시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또, 공척보는 한 옥타브 중 8음밖에 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악처럼 12조로 이조(移調)하는 음악은 표기할 수 없어 불편하다. 북송(北宋)의 심괄(沈括)이 쓴 ≪몽계필담 夢溪筆談≫(1093)에 처음으로 이 공척보가 언급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 사용된 공척보는 ≪세조실록≫ 중 신제아악보(新制雅樂譜)에 처음 사용되었는데, 위와 같이 율자보에 병기되었다. 그 뒤 ≪악학궤범≫ 권7에 당비파·당적·당피리·퉁소 등과 같은 당악기의 지법(指法)에 한하여 오음약보에 병기해서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 후로는 전혀 사용되지 않고 있다.

육보

육보는 악기의 소리를 흉내낸 소리[擬音], 즉 구음(口音)에 의한 악보로 구음을 내는 방법은 악기마다 다르다. 구음은 율명(律名)도 아니고 계명(階名)도 아닌 지법을 위한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세조실록≫ 악보 서에 의하면 이 육보는 고려 때도 사용되었다. 육보는 시대와 악기에 따라 그 용례가 다르며, 가장 처음으로 사용된 악보는 ≪안상금보 安瑺琴譜≫(1561)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악학궤범≫(1493)에 거문고·향비파·가얏고의 구음법(예:ᄃᆞ댕)이 일부 소개되어 있으나, 이것은 실제음악을 기보한 것이 아니라 그 지법만을 설명했을 뿐이다.

≪안상금보≫에는 거문고와 관악기의 육보를 합자보·오음약보와 병기하였다. 그 뒤로 대부분의 악보에서 육보는 합자보와 병기되었고, 특히 ≪삼죽금보 三竹琴譜≫(1863)에는 정간보 안에 육보만으로 기보하여 시가까지 기록하였다.

육보는 악기마다 각기 다른 구음을 가지고 있어 번거롭고, 구음 한 자에 두 음 이상이 해당하는 경우도 있어 육보만으로는 그 실음(實音)을 파악하기가 어려워 대부분의 경우 합자보와 함께 쓰였다.

오음악보

어떤 선법(旋法)의 중심 음을 ‘궁(宮)’으로 표시하고, 이 ‘궁’으로부터 그 음계를 따라 1음 위를 ‘상일(上一)’, 2음 위를 ‘상이(上二)’ 등으로 표시하며, ‘궁’에서 1음 아래를 ‘하일(下一)’, 2음 아래를 ‘하이(下二)’ 등으로 나타낸다.

이것은 한 옥타브 안에 5음만 표시하므로 6음음계나 7음음계의 음악일 경우에는 공척보의 ‘일(一)’과 ‘범(凡)’을 빌려 쓰기도 한다.

그러나 악보에서 보듯이 평조에서는 궁∼상일(上一), 상삼(上三)∼상사(上四) 사이의 음정이 이율(二律:장2도)이지만, 계면조에서는 각기 삼율(三律:단3도)이 된다. 따라서 평조라든가 계면조라는 표시가 악보에 없으면 그 음정을 알기가 어렵다.

오음약보는 단독으로 쓰이는 경우는 전혀 없고, 정간보와 함께 사용되어 그 시가를 알게 하였다. 이것은 세조 때 창안되어 ≪세조실록≫·≪대악후보≫·≪시용향악보≫에 사용되었고, 그 뒤 ≪금합자보 琴合字譜≫에서는 합자보 및 육보 등과 병기되었다가, 그 후의 악보에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합자보

거문고 연주법인 왼손 짚는 법[按絃法], 오른손의 탄법(彈法), 줄이름, 괘(棵)의 순서 등을 여러 약자를 모아 표시한 기보법이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의하면 성종 때 성현(成俔)이 악원제조(樂院提調)가 되어 전악(典樂) 박곤(朴0xF086)·김복근(金福根)과 함께 ≪사림광기 事林廣記≫·≪대성악보≫ 등에 바탕을 두고 자기 의사를 덧붙여서, 손 짚는 법[指爪之法]과 줄과 괘의 순서[絃柱之次第] 등 여러 글자를 모아 악보를 만들었다고 해서 합자보는 성현이 마련한 것으로 되어 있다.

≪악학궤범≫에 의하면 거문고·가얏고·당비파·향비파의 합자보에 대한 설명이 있으나, 그 뒤의 악보에는 거문고 합자보밖에 없다. 예외로 ≪금합자보≫ 중의 비파보가 합자보로 되어 있지만 거문고 합자보와 대동소이하다.

합자보의 장점은 안상(安瑺)이 ≪금합자보≫ 서문을 통해 “먼 시골에서 거문고를 배우고 싶어도 선생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이 악보를 보면 마치 선생이 옆에 앉아서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가르쳐 주는 것 같아 하나도 어려운 일이 없다.”라고 찬양한 바 있다.

그러나 합자보는 대개의 경우 육보와 나란히 병기되어 사용되다가 ≪유예지 遊藝志≫(18세기 말)에는 육보를 가운데 쓰고, 줄과 괘의 순서를 오른편에, 손 짚는 법은 육보의 왼편에 방서(旁書)하였다.

그 뒤 ≪삼죽금보≫(19세기 말)에 이르러 합자보는 줄과 괘의 순서만 드문드문 나오고 육보만 남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합자보가 차츰 없어지게 된 것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복잡해서가 아닌가 생각된다. ≪악학궤범≫의 거문고 합자법은 다음과 같다.

① 줄이름[絃法]

方:유현(遊絃)의 약자

大:대현(大絃)의 약자

上:괘상청(棵上淸)의 약자

又:기괘청(岐棵淸, 또는 棵下淸)의 약자

文:문현(文絃)의 약자

止:무현(武絃)의 약자

② 왼손 짚는 법[指法]

ㄱ:무지(拇指)의 약자

ㅅ:식지(食指)의 약자

߇:장지(長指)의 약자

夕:무명지(無名指)의 약자

小:소지(小指)의 약자

③ 괘의 순서

一·二·三·四·五로 표시

④ 타는 법[彈法]

﹂:술대 끝을 안쪽으로 향하게 하고 문현으로부터 5현을 밖으로 그어[順劃] 무현에 이르러 그치는 것을 ‘도(挑)’라고 하며, 속칭 ‘ᄉᆞ랭’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나는 소리는 양 청(괘상청과 기괘청)의 소리뿐이다.

」:술대 끝을 밖으로 향하게 하고 무현에서부터 5현을 거꾸로 안으로 그어 문현에 이르러 그치는 것을 ‘구(句)’라고 하며, 속칭 ‘ᄃᆞ랭’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 나는 소리는 양 청과 왼손으로 짚은 줄의 소리뿐이다.

ㅣ:문현·유현·대현의 3현을 치고 술대가 괘상청에 이르러 그치는 것을 속칭 ‘겹술’이라고 한다.

ㅡ:괘상청·기괘청의 양 청을 치고 술대가 무현에 이르러 그치는 것을 표시한다.

、(左點):1현만을 치는 표시

`(右點):1현만을 뜨는 표시

이 둘을 속칭 ‘외술[單匙]’이라고 한다.

또, 먼저 어느 한 괘를 짚어 타고 곧 다른 괘로 옮겨 짚고, 먼저 타서[挑] 낸 여성(餘聲)으로 낼 때에는 ‘도’나 ‘구’의 표시가 없다.

⑤ 합자법

{{#117}}:무지로 대현 제5괘를 짚고 다섯 줄을 차례로 내려 탄다.

{{#118}}:무명지로 유현 제4괘를 짚고 다섯 줄을 거꾸로 긋는다.

{{#119}}:무지로 유현 제8괘를 짚고 문현·유현·대현의 석 줄을 내려 탄다.

{{#120}}:식지로 유현 제6괘를 짚고 2줄만 탄다.

{{#121}}:장지로 대현 제2괘를 짚고 2줄만 뜬다.

{{#122}}:모지로 유현 제8괘를 짚고 탄 다음, 곧 제9괘로 바꾸어 짚어 먼저 탄 소리의 여성(餘聲)으로 낸다.

{{#123}}:식지로 대현 제3괘를 짚고 탄 다음, 장지로 제2괘로 옮겨 짚어 먼저 탄 소리의 여성으로 낸다.

{{#124}}:괘상청과 기괘청의 양 청을 탄다.

`上:괘상청만 탄다.

`下:기괘청만 탄다.

`文:문현만 탄다.

止`:무현만 뜬다.

≪악학궤범≫ 이후 대부분의 악보가 모두 이 합자보로 기보되었는데, 합자보 자체는 ≪악학궤범≫의 그것을 그대로 습용하였다. 그러나 농현(弄絃)이 차차 다채로워짐에 따라 합자보에 쓰이는 기호가 조금씩 첨가되었다.

≪금합자보≫에는 ≪악학궤범≫의 합자보에다 다음의 세 가지 기호가 첨가되었다.

ᛙ:처음에는 역안(力按)하고 다시 경안(輕按)하여 두 괘의 소리를 나게 한다. 즉, 퇴성과 비교된다.

•:힘들여 무겁게 짚기[重按]를 두서너 번 하는데, 이를 농(弄)이라고 한다.

搖:괘를 짚고 흔들어 줄을 흔드는 것을 이른다. ≪양금신보≫에는 다음의 세 가지 기호가 첨가된다.

ㅈ:경안, 즉 가볍게 줄을 누르는 표

{{#131}} : 농현

厶:그 줄을 세게 민[力推], 즉 그 음이 처음에는 낮다가[先平] 뒤에 높아지고[後高], 소리가 나면 곧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나타낸다.

그 밖에도 ≪현금동문유기 玄琴東文類記≫(1620)나 ≪현금신증가령 玄琴新證假令≫(1680)·≪한금신보 韓琴新譜≫(1724)·≪신작금보 新作琴譜≫ 등의 악보에는 각기 독특한 농현법의 기호를 사용하고 있으며, ≪유예지≫에는 다음과 같이 복잡한 농현의 표시가 나온다.

{{#132}}:농현을 길게 하는 표[多搖]

{{#133}}:농현을 짧게 하는 표[小搖]

婁:자주 흔드는 표[數搖]

{{#134}}:현재의 전성[轉聲]과 같은 표

隹:줄을 밀어서 높은 음을 내는 표

羊:퇴성(退聲)

示:소지(小指)로 문현을 뜨는 표

{{%127}}:술대[匙]로 문현을 타는 표

현재 합자보는 사용되지 않지만, 오선보로 기보할 때 그 농현법을 다음과 같은 기호로 표시한다.

{{#135}}또는 {{#138}}:자출(自出)

{{#136}}:전성(轉聲)

ⅠⅡⅢⅣⅤⅥ:줄의 순서

1 2 3 4 5 ……:괘의 자리

∨ 또는 >:뜰표

{{#130}}:어떤 음에서 다음 음으로 끌어올리거나 끌어내리는 표

연음표

소리의 억양을 노래[歌曲]의 사설 위에 부호로 표시한 것으로, 가객(歌客)들 사이에 자기 암표(暗標)로 사용되던 일종의 부호보(符號譜)이다. 서양의 그레고리오성가에 사용된 네우마(Neuma), 일본의 요곡보(謠曲譜)·평가비파보(平家琵琶譜)·성명보(聲明譜)의 박사(博士) 등과 비슷한 것이다.

≪가곡원류≫·≪협률대성 協律大成≫·≪여창가곡록 女唱歌曲錄≫ 등에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다. 연음표의 명칭은 ≪여창가곡록≫에 있으며, 괄호 속의 명칭은 ≪협률대성≫에 의한 것이다.

′:드는 표(드러내는 표)

{{#050}}:누르는 표(눌러 내는 표)

{{#051}} {{#052}} : 막 드는 표(막 내는 표)

߇:눌러 떼는 표(홋든흘림표)

{{#053}}:든흘림표(가즌흘림표)

{{#054}}:접어드는 표

{{#055}}:연음표(연음)

•: (쟝귀)

⫶:반각표(반각표)

⦙: (볼 떨어진 장단)

::연음 막 드는 표

이 중에서 드는 표, 누르는 표, 막 드는 표는 음의 높이와 관계가 있고, 든흘림표, 눌러 떼는 표, 접어드는 표는 음과 음의 연결과 관계가 있다. 그리고 연음표·쟝귀(章句)·반각표, 연음 막 드는 표, 볼 떨어진 장단 등은 장단과 기타 음악적인 표현과 관계가 있다.

정간보

정자(井字) 모양으로 칸을 질러 놓고 1칸[一井間]을 1박으로 쳐서 음의 시가를 표시하고, 그 정간 속에 음의 고저를 나타내는 율자보·오음약보·합자보·육보 등을 써넣는데, 이 중에도 특히 율자보를 넣는 것이 제일 많이 사용되며, 그 율명이 정간 속 어느 위치에 기보되어 있느냐에 따라 리듬을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정간보는 세종이 처음 창안했는데 한 행(行)이 강(綱)으로 나누어지지 않은 32정간이었다. 그 뒤 세조는 16정간으로 개량하였고, 한 행(行)을 3·2·3·3·2·3의 육대강(六大綱)으로 구분하였다. 육대강으로 나눈 이유를 ≪세조실록≫ 악보 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만·중·삭의 삼체는 강을 쓰는 데 따라 각각 달라서 성기고 자지고 느리고 급함이 같지 않다. …… 음악의 시작은 제1강에서도 나오고 제2강에서도 나오고 혹은 제3강에서도 나오는데, 그것은 음악의 체세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기고 자지다[疎數]’는 잔가락이 많고 적음과 관계가 있고, ‘느리고 급하다[緩急]’는 음악의 빠르기를 의미한다.

≪대악후보≫의 <진작 眞勺>은 일(一)·이(二)·삼(三)·사(四)가 있는데, 일과 이는 제2강, 삼은 제3강, 사는 제1강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일’은 가락이 가장 복잡하며, ‘이’와 ‘삼’은 ‘일’의 가락을 약간 덜어서 성기고[疎], ‘사’는 간략하며 가락이 중간에 많이 생략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진작>은 가락이 복잡한 데서부터 비롯하여 점점 성긴 데로[數→疎], 느린 데서부터 점점 빨라지고[緩→急]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제2강이 가장 느리고 동시에 잔가락이 많으며, 다음이 제3강이요, 제1강이 가장 빠르고 성긴 음악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악후보≫에는 <봉황음 鳳凰吟>과 <치화평 致和平>도 각각 일·이·삼이 있는데, 전자는 모두 제1강에서 시작하고 있어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러나 후자는 ‘일’과 ‘이’가 모두 제2강에서 시작하고 ‘삼’이 제3강에서 시작하고 있어 <진작>과 동류로 볼 수 있다.

또 ≪시용향악보≫의 <대국 大國>도 일·이·삼으로 되어 있는데, ‘일’은 제2강, ‘이’와 ‘삼’은 제1강에서 시작하고 있어서 점점 빨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양금신보≫의 <중대엽 中大葉> 다섯 곡은 모두 제3강에서 시작하고 있어서 제2강에서 시작한 <만대엽>보다 빠른 곡임을 알 수 있다.

용강법(用綱法)을 제2·3·4강에서 시작한 예는 ≪속악원보 俗樂源譜≫(1892) 이후에는 보이지 않는다. ≪속악원보≫의 <정대업 定大業>과 <보태평 保太平>만이 제2강 혹은 제3강부터 시작하고 있는데, 이것은 ≪대악후보≫의 <정대업>·<보태평>과 동일하다.

따라서 ≪속악원보≫는 ≪대악후보≫의 <정대업>·<보태평>을 그대로 옮겨 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용강을 달리한 기보법은 ≪대악후보≫와 ≪속악원보≫의 간행연대 사이에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현행 <삭대엽 數大葉>은 모두 제1강에서부터 기보되어 있다. 그러나 김기수(金琪洙)나 이주환(李珠煥)은 이 16정간을 3·2·3·3·2·3으로 나누지 않고 3·3·2·3·3·2로 나누고 있다. 그런데 ≪양금신보≫의 <중대엽>은 제3강부터 시작하고 있어서 3·2·3·3·2·3이 아니라 3·3·2·3·3·2의 단위로 되어 있다.

현재 주로 국립국악원에서 간행된 <정간보>는 16정간 뿐 아니라 20정간·12정간·10정간·6정간 등 그 종류가 많다. 20정간은 6·4·4·6으로 세분되며, <영산회상 靈山會上> 중 <상영산 上靈山>·<중영산 中靈山>·<여민락 與民樂>의 1·2·3장, <보허자 步虛子>·<보허사 步虛詞>의 1∼4장 등에 쓰인다.

12정간은 3·3·3·3으로 세분되며, <영산회상> 중 <타령>과 <군악>·<계면가락도드리 界面加樂還入>·<우조가락도드리 羽調加樂還入> 등에 쓰인다. 예외로 <취타 吹打>는 12정간이기는 하나 2박 단위(6·6)로 세분된다.

10정간은 3·2·2·3으로 세분되며, <영산회상> 중 <세영산 細靈山>·<가락덜이 加樂除只>·<여민락>의 4∼7장, <보허사>의 5∼7장, 가곡의 <우편 羽編>·<편락 編樂>·<편수대엽 編數大葉>·<언편 言編> 등에 사용된다. 8정간은 2·2·2·2로 세분되어 행진곡풍을 이루며 <길군악 折花>에 사용된다.

6정간은 3·3으로 세분되며, <영산회상> 중 <삼현도드리 三絃還入>·<하현도드리 下絃還入>·<염불도드리 念佛還入>·<밑도드리 尾還入>·<잔도드리 細還入>와 가사 중 <백구사 白鷗詞>·<춘면곡 春眠曲>·<건곤가 乾坤歌>·<어부사 漁父詞>·<황계사 黃鷄詞>·<길군악>·<수양산가 首陽山歌>·<매화타령 梅花打令> 등에 사용된다.

5정간은 가사 중 <상사별곡 相思別曲>·<처사가 處士歌>·<양양가 襄陽歌>, 그리고 시조에도 쓰인다. 각국의 유량악보(有量樂譜)를 보면 서양에서는 12세기에 발달하기 시작하여 15, 16세기에 대개 오늘날과 같은 오선보로 발달되었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주재육(朱載堉)이 정간보로 찬한 ≪영성소무보 靈星小舞譜≫가 만력 연간(萬曆年間, 1573∼1620)에 나왔고, 일본에서는 32정간의 정간보를 사용한 ≪금곡지보 琴曲指譜≫(1764)가 최초의 유량악보로 나온 데 비해, 우리 나라에서는 15세기 세종 때 이미 사용되었으니 동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세종실록≫ 악보, ≪세조실록≫ 악보와 ≪금합자보≫·≪양금신보≫·≪대악후보≫·≪속악원보≫ 등에 이 정간보가 사용되었고, 지금도 궁중음악은 정간보에 율자보를 넣어서 사용하고 있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나라의 옛 기보법은 일곱 가지가 있으나, 정간보를 제외한 여섯 가지 기보법은 음고(音高)와 관련이 있고, 오직 정간보만이 시가를 기보하였다. 이들 기보법은 다 각기 특정한 종류의 음악을 기보하고 있어서 기보법을 통일하지 못한 채 사용되어 왔다.

예컨대, 아악은 율자보로, 당악은 공척보로, 관악(管樂)은 육보로, 향악의 현악(絃樂)은 육보 또는 합자보로, 가곡은 연음표로 각각 다른 기보법으로 써왔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서부터는 모든 궁중음악, 즉 아악(雅樂)은 율자보와 정간보를 혼용한 악보에 기록해서 사용하는 것이 전통이 되어 지금도 그대로 쓰고 있다.

하지만 범패(梵唄)·판소리·산조(散調)·민요·농악·무악(巫樂)·잡가 등 이른바 민속음악은 그 가락과 장단이 복잡하여 정간보와 율자보로는 표기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최근에는 서양의 오선보로 채보(採譜)하여 기록하지만, 복잡한 시김새(표현기법)와 미묘한 음정은 서양음악과 너무나 다른 까닭에 오선보로 기보하기가 불가능하다.

최근에는 기보방법의 발달로 복잡한 시김새를 위하여 여러 가지 약속기호를 만들어서 그 음 위에 표시하고, 미묘한 음정차(音程差)를 위하여 오선보 밑에 구음으로 표시하고 있다. →악보

참고문헌

『세종실록』
『세조실록』
『금합자보(琴合字譜)』
『양금신보(梁琴新譜)』
『대악후보(大樂後譜)』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
『속악원보(俗樂源譜)』
『가곡원류(歌曲源流)』
「한국의 구 기보법」(이혜구, 『한국음악연구』, 국민음악연구회, 1957)
『가곡보』(이주환, 국립국악원, 1959)
『가야금산조』(이재숙 채보, 한국국악학회, 1971)
『남창가곡백선』(김기수, 대한대악원, 1979)
『국역악학궤범』(민족문화추진회, 1979)
「연음표의 문제점에 대한 고찰」(송방송, 『이혜구박사송수기념음악학논총』, 한국국악학회, 1969)
「한국음악의 기보법」(장사훈, 『한국전통음악의 연구』, 보진재,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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