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간보는 강보(腔譜)라고도 불렀다. 정간보를 창안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가 1445년(세종 27)에 완성되고 여기에 붙인 음악이 1447년(세종 29) 5월 5일에 처음 연주되었으므로 늦어도 1447년까지 정간보의 핵심 아이디어가 완성된 것으로 본다. 당시의 악보 원본은 전하지 않고, 세종 사후 『세종실록』 권136147 「악보」 중 권138146에 정간보로 기보된 다량의 악곡이 수록되었다.
세종 때 창안된 정간보는 세조 때 한 차례 개정을 거쳐 관찬악보집들의 표준 기보법으로 정착했고, 민간에서도 조선 중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널리 활용되었다. 이상의 ‘역사적 정간보’는 20세기 이후 여러 가지 ‘근대 정간보’로 개량되어 정악(正樂)과 일부 민속악 및 학교 교육 현장에서 쓰이고 있다.
최초의 정간보는 조선 세종 때 창안되었다. 당시에 음길이를 적을 수 있는 기보법이 필요했던 이유는, 조선 개국 초에 대대적으로 궁중음악을 정비하면서 수많은 악곡을 단시간에 제정하고 정착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세종식 정간보는 1행이 32정간이며, 1행은 다시 2~6개의 소행(小行)으로 나뉘어 현악 선율, 관악 선율, 장구, 박(拍), 노랫말, 노래 선율 등을 적어 넣을 수 있게 했다. 선율은 주2의 첫 글자인 율자(律字)로 적었고, 3정간 또는 2정간 단위로 묶은 대강(大綱) 선이 드러나 있지 않으며, 음악이 몇 번째 대강에서 시작하느냐에 상관없이 실제 음악이 시작하는 음부터 채워 적었다.
정간보는 세조 때 한 차례 개량되었다. 선율을 율자 대신 오음약보(五音略譜), 일명 궁상하지법(宮上下之法)으로 적고, 1행이 16정간으로 줄어들면서 규칙적으로 3·2·3정간 단위로 굵은 대강선을 긋고, 음악이 제2대강이나 제3대강에서 시작할 경우 처음 12대강을 비워 두었다. 『세조실록』 권4849 「악보」로 전해지는 세조식 정간보가 이후 관찬악보의 표준처럼 되어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 『시용무보(時用舞譜)』, 『대악후보(大樂後譜)』, 『속악원보(俗樂源譜)』 등이 세조식 정간보 또는 그 변형을 채택했다.
현전 최고의 민간 악보집들인 『금합자보(琴合字譜)』(1572)와 『양금신보(梁琴新譜)』(1610) 이후 20세기 초까지 민간에서도 정간보를 다양하게 변형하여 활용했다. 관찬 악보집과 달리 민간 악보집들은 후기로 내려오면서 음악에 따라 1행 6정간, 10정간, 16정간, 20정간 등을 구별해 적고 있어,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고는 정간을 곧이곧대로 시간 단위로 본 것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주3가 기본인 음악 현장에서는 정교한 악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으므로 정간보의 쓰임은 점점 줄어들었다.
전통 음악 중 정악에서는 이왕직 주4를 거쳐 국립국악원으로 계승되고 김기수(金琪洙, 1917~1986)가 정비한 세로 정간보가 표준 기보법처럼 통용된다. 정악의 정간보는 음높이를 율자로 적고, 장단 단위에 따라 1행을 4행, 6행, 10행, 12행, 16행, 20행 등으로 나누고 가로선으로 대강을 구분하기도 하며, 1정간 또는 1대강이 규칙적으로 1박이 된다.
민속악에서는 연주자나 유파에 따라 세로 정간보를 쓰기도 하지만 대체로 주5 기보를 더 선호한다. 양손을 쓰는 타악은 가로 정간보나 외줄 기보가 대세이지만, 왼손과 오른손이 직관적으로 잘 구분되도록 세로 정간보를 고안해 쓰는 집단도 있다. 창작곡은 거의 보표 기보로 적는다.
교육 현장에서는 여러 가지 형태의 가로 정간보가 개량을 거듭하며 정착했다.
세종 이래 관찬 정간보의 가장 큰 쟁점은, 정간보의 정간을 곧이곧대로 시간 단위로 볼 수 있는가이다. 정간보의 반행, 즉 3대강(3+2+3=8정간)이 규칙적인 시간 단위라는 데까지는 연구자들 간에 이견이 없으나, 그 아래 대강 및 정간의 음길이 해석은 악곡 또는 연구자에 따라 해석이 구구하다.
정간보는 음길이를 정량적(quantitative)으로 시각화하고 자의적(arbitrary)으로 음높이를 율자와 오음약보로 약호(約號, code)화한 것이고, 보표 기보인 오선보는 반대로 음높이를 비유(analogy)적으로 시각화하고 음길이를 음표와 쉼표로 약호화한 것이다. 어느 경우나 음높이는 1옥타브를 12음으로 구분하므로, 이론상 정간보와 오선보의 ‘음높이+음길이’ 결합체는 100퍼센트 호환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