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음표는 조선 후기 발생한 시조시 글자 옆에 표기된 여러 가지 형태의 성악 부호이다. 가창자는 시조시를 노래할 때, 글자 옆에 표기된 다양한 형태의 성악 부호를 통하여 노래를 부르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성악 부호는 부호표이면서 암표이다. 가창자가 연음표에 대한 학습이 없는 경우, 다양한 형태의 성악 부호를 해독할 수 없기 때문에 노래 부르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연음표는 악보의 기능을 수반한다. 연음표는 정확한 음정과 박자를 제시하지 않지만, 소리[음]의 높낮이, 소리[음]의 연결, 장단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조선 후기 풍류방(風流房)을 통하여 가단(歌壇)이 형성되고 풍류 행위가 발달하였다. 풍류 행위 중 시조시를 노래하는 가곡에 사용한 성악 부호는 암묵적인 약속이다. 그래서 성악 부호는 부호표이면서 주1이다. 성악 부호는 가집(歌集)을 통하여 전파되었다.
조선 후기 발생한 연음표(連音標)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분화되었다. 『가곡원류(歌曲源流)』[1876년]에 표기된 연음표는 누르는 표, 드는 표, 눌러 세는 표, 막내는 표, 접어 드는 표, 연음표, 든 흘림표, 반각표 등 8종이 주2 『가곡원류』 이본 12종에도 연음표 사용이 주3 『협률대성(協律大成)』과 『여창가곡록(女唱歌曲錄)』[편찬 연대 미상]에는 9종이 발견된다. 그리고 근대 가곡의 거장 하규일(河圭一: 1867~1937)은 연음표를 ‘발음표’로 명기하였으며, 16종의 부호를 사용하였다. 연음표가 세분화되고 성악 부호의 표기 형태가 다양화되었다.
현재 사용하는 연음표의 명칭은 발생 초기에 명명된 것은 아니다. 『가곡원류』에는 부호의 표기만 있으며, 해당 명칭은 확인할 수 없다. 가객들에 의해 주4로 전승되던 내용을 후대에서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부호 명칭 중 하나에 불과했던 연음표가 대표성을 가진 것으로 주5
연음표는 그레고리안 주6에 사용된 주7와 음악적 기능이 유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연음표는 시조시의 글자 옆에 부호로 표기되어, 가창자가 노래 부를 때 부호를 통하여 소리[음]의 높낮이, 소리[음]의 연결, 장단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이, 그레고리안 성가를 부를 때 목소리의 상승과 하강, 선율의 이동 등의 정보를 부호로서 표기하는 방법과 기능이 유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