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웅초(熊超).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川端美術學校)를 졸업했다. 1933년 9월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된 이광수(李光洙)의 「유정(有情)」의 삽화를 비롯하여 함대훈(咸大勳)의 「폭풍전야(暴風前夜)」(1934), 한용운(韓龍雲)의 「흑풍(黑風)」(1935), 이광수의 「이차돈(異次頓)의 사(死)」(1935∼1936), 김말봉(金末峰)의 「찔레꽃」(1937), 홍명희(洪命憙)의 「임꺽정(林巨正)」(1937∼1939), 한용운의 「삼국지」(1939∼1940) 등에 삽화를 그렸다.
1935년 5월에는 같은 신문에 유머소설 「망부석(望夫石)」을 직접 쓰고 거기에 그림까지 곁들여 다재다능한 역량을 잘 보여주었다. 또한, 광복 후에도 『조선일보』에 시사만평을 발표하였으며, 정비석(鄭飛石)의 「암야행로(暗夜行路)」(1947), 염상섭(廉想涉)의 「난류(暖流)」(1950), 김영수(金永壽)의 「빙하(氷河)」(1959∼1960) 등에도 삽화를 그렸다.
6·25남침 때는 일본 동경 주재 유엔군사령부의 심리작전과 전속화가로 활약하였고, 1961년 귀국하여 만년에는 『한국일보』에 시사만화를 맡아 발표하였다. 풍자작품으로 「망부석」과 함께 「억지 춘향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