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회을(悔乙). 제주 출생.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정경학부 경제과를 마치고 귀국하여 협동조합운동을 전개하였다.
1955년 조봉암(曺奉岩)·서상일(徐相日)·신숙(申肅)·이동화(李東華) 등과 진보당(進步黨) 창당 추진위원으로 혁신계에 가담한 뒤 1960년전진한(錢鎭漢)과 한국사회당(韓國社會黨)을 창당하고 7·29국회의원 총선거 때 제5대 민의원(民議員)으로 남제주에서 당선되어 짧은 기간이나마 민정구락부(民政俱樂部)에 소속되어 의정활동을 하였다.
이듬해 1월 20일 서상일·이동화·윤길중(尹吉重)·조헌식(趙憲植)·정화암(鄭華巖) 등의 사회대중당(社會大衆黨) 준비위원들 및 고정훈(高貞勳)·한왕균(韓旺均) 등의 사회혁신당(社會革新黨)과 통합하여 중도 혁신계 연합의 통일사회당을 창당하여 활동을 하려던 중 5·16 사태로 구속되고 정당은 해체되었다.
그 해 12월 통일사회당 임원 13인과 함께 기소되고 1962년 2월 11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선고를 받게 되어 항소했으나, 4월 27일 혁명재판소 항소심에서는 이를 기각하였다.
민주사회주의 정당에 대한 집념은 1965년 7월 통일사회당 공동대표로 창당준비 작업에 임하게 하나 얼마 뒤 정권처분을 받게 되자 이듬해 5월 9일 민주사회당 창당준비위원회 결성에 나서게 되며, 1967년 3월 9일 서민호(徐珉濠)의 대중당과 합세하기에 이르지만 여전히 군소정당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1983년에 건국공로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