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대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경기도관찰사, 함경도관찰사,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덕용(德容)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14년(숙종 40)
사망 연도
1775년(영조 51)
본관
경주(慶州)
주요 관직
예조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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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경기도관찰사, 함경도관찰사,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덕용(德容). 김필진(金必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개신(金介臣)이고, 아버지는 은율현감 김세연(金世衍)이며, 어머니는 박필구(朴弼耉)의 딸이다.

사복시정(司僕寺正) 김구연(金九淵)에게 입양되어 숙종의 계비 인원왕후(仁元王后)의 친정 조카 뻘이 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처음에는 문음(門蔭)으로 이천부사(利川府使)가 되었다가 1756년(영조 32) 식년 문과에 갑과로 주1 이듬해에 승지로 특진되었다.

1762년에는 대사헌(大司憲)에 임명되었고, 뒤에 경기도관찰사로 나갔다. 1764년에 전은군(全恩君) 이돈(李墩) · 안표(安杓)와 함께 사은사가 되어 청나라에 주2 1767년에는 함경도관찰사로서 백두산의 제사를 위한 제단 설치의 논의에 참여, 그 위치를 갑산(甲山)에 정하도록 건의하여 주3 그 뒤에 예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경주김씨족보(慶州金氏族譜)』
주석
주1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주2

사은사 임명 : 『영조실록』 103권, 1764년(영조 40) 6월 30일. "경현당에 나가 도목정을 행하다"

주3

백두사 제사 논의 : 『영조실록』 109권, 1767년(영조 43) 윤7월 10일. "시 원임 대신 등에게 용비어천가를 읽고 의견을 수렴할 것을 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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